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진행한 ‘개항 150주년 인문콘서트’의 사회를 맡아 15주에 걸쳐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 부산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해서 고견을 청해 들었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한 손님이 바로 이해인 수녀님이었다. 나에게는 시인으로 먼저 기억되었던 이해인 수녀님은 광안동 올리베따노 성(聖) 베네딕도 수녀원의 상징적인 공간인 해인 글방으로 어린 소설가를 초대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수녀원이라는 낯선 장소이자 글방이라는 친숙한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날을 회상하자니 씁쓸한 감정이 마음 한쪽을 먼저 채운다. 해인 글방은 올 10월경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 예정으로 첫 번째 방문이 마지막이 되었다. 오래된 명패가 걸린 노후한 단층 건물은 세상의 소란에서 멀리 떨어진 것만 같이 차분했다. 수녀님은 언제나 이해인이라는 세 글자로 인식되어 한 번도 성을 빼놓고 불러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오래된 명패와 마주한 뒤 글방에 들어선 순간 해인(海仁)이라는 필명에 바다가 담겨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해인은 돌아온 탕아를 만난 듯이 어린 소설가를 반겨주었고, 그 인자한 미소 앞에 나는 이날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문 앞 벽면에는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장식된 세월의 흔적들이 이곳을 찾는 손님들을 다정하게 맞아주고 있었다.
나는 수녀님의 손에 이끌려 나무 의자에 앉았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글방에 익숙해지려 애쓰니 땀이 솟기 시작했다. 마침 수녀님이 ‘냉커피 마실까요, 우리.’ 해서 얼른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랑을 받은 〈민들레의 영토〉가 세상에 나온 게 1976년이니 50년이 훌쩍 넘었다. 수녀님이 종신서원을 한 것도 그 해다. 신앙으로 시인으로 반평생을 지내오신 셈이다.
라디오에서 시를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해인의 시를 읽은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시대를 넘어서는 둥근 운율과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언어의 결로 온기를 내어주는 시적 실체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해인 글방은 많은 글 중에서도 편지들이 머무는 공간이었다. 독자들의 고해성사와도 같은 고백이 담긴 수많은 편지가 이곳으로 도착했다. 이런저런 편지를 소개하면서도 수녀님은 한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줄 것들을 찾아냈다. 말씀이 담긴 조개껍데기와 땀을 닦으라고 건넨 손수건, 부채, 에코백, 직접 쓴 학위 논문들, 옛 사진, 그리고 보자기에 소담하게 담긴 망고 두 알. 무얼 내주지 않았는지 살피고 살피면서도 우리의 대화는 조금도 끊기지 않았다.
창으로 희뿌연 햇살이 번져가고 있었다. 문득 새소리가 너무 가까이에서 들려와 눈길을 두자, 시간마다 새소리가 나는 시계라며 내 시선에 대한 궁금증도 사려 깊게 풀어주셨다. 순간 나는 그 앞에서 기쁨도 슬픔도 몽땅 다 내어놓을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박완서 선생님이 지내던 방에 가볼까요?’
내가 소설가라는 걸 상기하듯, 수녀님이 먼저 그 말을 꺼냈다. 박완서 소설가가 참척의 비통을 견디기 위해 수녀님을 찾아와 한동안 지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나는 그 방을 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거기에는 내가 엿보아선 안 되는 어떤 슬픔들이 아직 부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였다. 그러나 수녀님은 나를 수녀원의 오르막길에 자리한 언덕방으로 이끌었다. 이름을 먼저 지어놓고 뒤에 뜻을 붙인 환대의 방이라 했다. 해는 아직 저만치 높이 떠 있었다.
‘섭섭하진 않으세요?’ 사라지는 공간에 대한 나의 물음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랬듯 앞으로도 내가 해인으로, 움직이는 글방으로 살아가면 되겠지요.’
우리는 언덕방을 통과해서 수녀원으로 돌아왔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선배 시인을 만난다고 하니 잔뜩 긴장한 채였고, 각진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게 내 이마에 땀방울을 맺히게 했다.
‘그런데 작가님.’ 수녀님이 나를 불렀다.
‘요맘때 하나 먹고 가면 안 될까?’
수녀님이 내게 건넨 그 한마디가 얼마나 둥글고 상쾌하고 명랑하던지. 내가 한사코 거절하자 수녀님은 글방 안으로 서둘러 들어가더니 나를 향해 달려오다시피 해서는 커다란 향초 하나를 건네주었다.
‘내가 종종 글 쓸 때 켜두던 거예요.’
해인이 내게 초를 건네주었다. 작고 조용한, 촛불 같은 글을 만들라는 뜻일까. 해인의 바다는 단 한 번의 멈춤도 없이 이리도 흐르고 계셨구나. 그 순간 나는 그 낮고 고요한 바다 같은 글방 앞에선 한 시인의 미소를 영영 잊을 수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