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전세와 월세 사이

입력 : 2026-10-19 18: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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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는 거액의 보증금을 주고받는 전세 제도가 거의 없다. 대부분 국가가 월세 중심 임대차 제도를 운용한다. 보증금도 1~6개월 치 월세 수준이고, 집주인이 마음대로 쓸 수도 없다. 미국이나 독일은 보증금을 별도 신탁 계좌나 전용 계좌에 예치하도록 한다. 영국에선 2007년부터 제3 보호기관에 보증금을 맡겨야 한다.

큰 보증금으로 집을 빌리고, 계약 기간 후 세입자에게 원금을 돌려주는 한국의 전세는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제도다. 유래를 놓고 다양한 설이 있으나 고려나 조선시대에 돈을 빌리기 위해 토지나 가옥을 맡겼다가 원금을 반환하면 돌려받던 관행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와 1960~1970년대 고금리 시대를 거쳐 정착했다.

2000년대 들어 경기 침체, 금리 변동 등으로 줄어들던 전세는 최근 기승을 부린 전세사기 때문에 기피 현상마저 생겼다. 하지만 매달 주거비를 내는 월세보다 목돈을 모을 수 있는 전세를 선호하는 세입자가 여전히 많다. 집주인도 목돈을 받아 집을 구입하거나 활용하는 편이 유리하다.

정부가 연내 도입하기로 한 전월세 안심신탁은 전세와 월세의 장점을 가져온 제도다.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받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운용한 뒤 운용 수익을 매달 집주인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전세사기 대안으로 나온 만큼 세입자에게 더 유리하다. 무엇보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자유롭게 쓸 수가 없다. 수익금은 서울 연립·다세대주택 기준, 전세금 2억 원이면 집주인은 월 73만 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HUG 설명이다.

전세의 월세화도 제도를 마련한 배경이다. 보증금을 떼일 수 있다는 우려로 전세 수요와 공급이 위축되고 월세 선호가 강해졌고, 세입자 부담도 커졌다.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월세로 바뀐 임대차 물량을 다시 전세로 돌리겠다는 구상이다. 세입자들이 안전하게 전세에 거주하며 목돈을 모을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집주인 참여가 관건이다. 집주인들이 전세를 놓는 건 목돈을 받아 다른 투자를 하거나 대출을 갚는 일종의 레버리지 효과 때문이다. 수익률이 높은 투자처가 있는 집주인에게는 HUG가 제시하는 4%대 수익이 성에 안 찰 수 있다. 목 좋은 곳에 집을 둔 집주인에겐 월세가 유리하다. 운용자 리스크도 있다. 시장 금리가 급변하거나 운용 수익이 기대에 못 미칠 경우 공적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HUG, 즉 국가가 져야 할 부담이다.

김영한 논설위원 kim01@busan.com

김영한 논설위원 kim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