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결과물이 닮아가는 시대

입력 : 2026-10-19 1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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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사회부 부장

“작곡가의 90퍼센트가 AI를 쓰는 것 같아요.” 작곡가 김형석이 최근 진행한 인터뷰에서 전한 체감이다. 창작 현장에서 AI가 얼마나 널리 쓰이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가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 ‘키사스’ 캠프에서도 아이들은 AI로 음악을 만든다. 다만 곧바로 AI에 음악을 주문하지는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같은 주제를 놓고 읽고 토론하며 에세이를 쓴다. 그 에세이를 가사로 옮긴 다음에야 AI 도구를 쓴다. 김 작곡가는 AI를 쓰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와 기본 구상은 사람이 먼저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성형 AI는 서툰 생각을 그럴듯한 결과물로 바꾸는 문턱을 낮췄다. 단 몇 줄의 주문으로 글과 음악, 그림을 얻을 수 있다. 표현 기술이 부족해서 이런 것들을 시도하기조차 어려웠던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변화다. 그런데 결과물이 좋아졌다고 해서 만든 사람의 생각도 깊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24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연구가 눈길을 끈다. 연구진은 짧은 소설을 쓰는 참가자들을 AI의 도움 없이 쓰는 집단과 AI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집단으로 나눴다. AI의 도움을 받은 작품은 창의성과 완성도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았고, 원래 창의성 수준이 낮았던 참가자에게는 효과가 더 컸다. 그런데 완성된 작품들을 놓고 비교해 보니 AI의 도움을 받은 이야기들이 AI의 도움 없이 쓴 이야기들보다 서로 더 비슷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카네기멜런대 연구진이 2025년 발표한 연구도 있다. 생성형 AI를 업무에 쓰는 지식노동자들이 보고한 활용 사례를 분석했다. 그 결과 AI에 대한 확신이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를 덜 하는 경향이, 본인 능력에 대한 확신이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를 더 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물론 이런 연구를 음악이나 아동 교육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AI가 사고력을 떨어뜨린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결과물의 완성도가 높다고 해서 만든 사람이 깊이 생각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은 알게 한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는 이 문제를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유창한 글을 써낸 학생이 그 내용을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는지는 글만으로는 알 수 없다. AI가 완성도를 높여줄수록 왜 그 주제를 골랐는지, 자신의 어떤 경험을 반영했는지, 어떤 이유로 결과를 고쳤는지가 중요해진다. 가르치고 평가하는 쪽의 고민도 그만큼 깊어져야 한다.

남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남의 표현을 따라 배우는 과정도 필요하고, 비슷하더라도 자기 생각일 수 있다. AI를 쓰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AI의 제안을 보고 난 후 자신의 생각이 더 분명해지기도 하고, AI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다가 원하는 방향을 찾기도 한다. 다만 결과물만으로는 그 과정들을 거쳤는지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키사스 캠프의 활동 순서는 눈여겨볼 만하다. 아이들이 먼저 썼던 글은 AI가 내놓는 음악을 고를 때 기준이 될 수 있다. 듣기 좋은 곡인지를 넘어서 내가 원래 하려던 이야기에 어울리는 곡인지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물이 닮아가는 시대, 잘 만든 결과물만으로 잘 배웠다고 할 수 있을까.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