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영화 ‘가능한 사랑’을 보고 한참을 여운에 휩싸여 있다가 문득 그의 소설을 다시 읽고 싶어져 책장에서 빛바랜 책을 꺼냈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라는 단편소설집인데, 작년에 개정판이 새로 나오긴 했지만 내 책장에 있는 것은 학생 시절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 샀던 애틋함이 묻어 있는 책으로, 속표지의 위쪽에는 ‘2003. 7. 31. 서정아’라는 손글씨가 조그맣게 적혀 있다. 요즘 나오는 신간의 매끈하고 세련된 표지를 두 손에 얹을 때 설레는 기분도 물론 좋지만, 모양새가 투박하고 낡고 빛바랬어도 문청 시절 나의 진지함과 열정이 묻어 있는 옛 책을 다시 바라볼 때의 마음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렇게 다시금 꺼내든 그의 소설은 세월이 흘러 다시 읽어도 좋았다. 아니, 다시 읽으니 더 좋았다. 20대의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도 했고, 작가의 진정성이라는 것은 시대와 상관없이 작품 속에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책의 작가 후기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어딘가에 내 글을 읽고 마음이 움직일, 얼굴 모르는 독자들이 있으리란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하리라. 문학에 대해 성실하지 못하다는 것은 내 삶에 대한 불성실함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리라.’ 이런 마음가짐으로 한 문장 한 문장 글을 써나갔을 그의 간절함을 헤아려 보면서, 내가 문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과 태도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의 예술작품에서 시작된 질문
우리 마음에서 어디까지 뻗어갈까
그 가능성을 끝까지 지켜본다는 것
‘가능한 사랑’은 노동, 계급, 폭력, 시선,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층적으로 다룬 영화이다. 해고 노동자와 관련된 현실 상황,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 이 세계의 부조리와 인간의 복잡한 내면, 그리고 사랑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등 관객에게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로, 영화 속 호석이 미옥과 연애하던 시절 함께 보름달을 보다가 “내 속이 저 보름달 같다.”며 자기 속을 봐달라고 말하는 씬이 있다. 그 순간 호석이 했던 말은 연인에게 건네는 사랑의 언어이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한 사람이 타인과 세상을 향해 호소하고 싶은 마음으로 보이기도 했다. 명확한 언어로 말할 수 없다 해도 누군가는 내 속을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그 속을 정확하게 볼 수 없다 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려고 애쓰는 누군가의 마음. 이 영화의 내용과는 별개로, 그건 마치 예술 창작자와 향유자 사이에 ‘가능한 사랑’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예술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생각하게 하고 여운과 감동을 느끼게 하며 때로는 어떤 문제의식을 갖거나 질문을 던지게 한다. 하나의 답으로 수렴하지 않고 수많은 방향으로 확장되는 질문들. 그렇게 뻗어나간 사유는 또 다른 창작의 아이디어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때때로 예술작품을 편협한 잣대나 기준으로 재단하려는 경우가 있다. 비유와 상징, 암시와 모호성, 여백과 침묵, 의미의 다층성과 불확정성 같은 예술의 특성을 무시하고 사실관계를 증명하려 들거나 명확한 의미를 요구하거나 도덕적·윤리적 기준에 따라 심판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 속 현실은 극적 설정에 따라 허구적으로 재현된 것이지, 현실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 아니다. 작품 속 인물은 현실의 누군가와 완벽히 동일한 인물이 아니며, 인물의 말과 행동이 모두 작가의 신념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작품 속 사건을 현실의 사실관계로 검증하려 들거나 인물의 행위를 현실의 윤리 기준에만 맞추어 판단하려 할 때, 예술작품의 고유한 가치와 미학은 빛을 잃고 만다. 하나의 작품에서 시작된 질문이 우리의 마음에서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을까. 나는 그 가능성을 끝까지 지켜보고 싶고, 그것이 예술에 대한 나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