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 송도 제3공장의 전경.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삼성바이오로직스 노동조합이 법원의 쟁의행위 제한 결정에 불복해 항고하고 최대 12억 원 규모의 쟁의기금을 마련하는 등 파업 재개 수순에 들어갔다. 생산공정 전반을 파업 중에도 평소대로 가동하라는 항고심 결정이 헌법상 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결정을 규탄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는 26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한국노총,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의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항고심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노조는 "보안작업의 범위를 넓혀 헌법이 보장한 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한 결정"이라며 재항고와 함께 국회와 정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앞서 서울고법 인천원외재판부 민사1부는 지난 16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제기한 가처분 항고심에서 사측이 신청한 9개 공정 전부를 쟁의행위 제한 대상으로 인용했다. 지난 4월 1심은 생산이 거의 마무리된 단계의 3개 작업만 노조법 38조 2항이 정한 '원료·제품의 변질·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으로 보고 나머지 6개 공정의 쟁의권을 인정했지만, 항고심은 배양과 정제, 충전 등 핵심 생산공정 전반으로 제한 범위를 넓혔다. 이에 따라 노조는 파업 기간에도 평소와 같은 인력과 시간, 규모로 생산을 계속해야 한다.
노조 측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덕수 김수영 변호사는 항고심이 법 문언을 사실상 바꿔 읽었다고 지적했다. 노조법 38조 2항은 '변질·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작업의 목적을 규정하고 있는데, 항고심은 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변질될 위험이 있는 작업'으로 해석해 생산 자체를 보안작업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1997년 입법 당시 이 조항이 상정한 작업은 냉장·방부 작업이나 냉동창고 전원 공급, 용광로 작업 정도였고 대법원 판례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 해석이 굳어지면 반도체와 화학, 철강 등 연속공정을 갖춘 모든 산업에서 파업권이 무력화된다고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제공
노조는 이번 결정이 삼성바이오로직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지난 5월 수원지법도 삼성전자 파업 관련 가처분에서 반도체 공정 전체를 쟁의행위 제한 대상으로 판단한 바 있다. 한국노총 강석균 상임부위원장은 "공정이 연결돼 있다는 이유로 주요 생산공정을 멈출 수 없게 한다면 연속공정 사업장 노동자의 파업권은 남아 있지 않게 된다"며 산하 조직과 연대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용우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고용노동부에 파업 중 계속해야 할 작업의 범위와 기준을 명확히 하도록 요구하고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노조는 사측 책임도 거론했다. 지난해 드러난 사내 인사문건에 '저성과자 관리' 명목으로 하위평가를 늘려 희망퇴직을 유도하고 조합비 납부 내역과 통상임금 소송 참여자를 별도 관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도 회사가 시정 요구를 '무리한 요구'로 몰고 있다는 것이다. 가처분 결정 이후에도 조합원들은 지난 19일부터 점심시간 사내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수십 명으로 시작한 집회에 며칠 만에 수백 명이 모였다고 노조는 전했다.
재항고와 별도로 노조는 전날 쟁의기금 조성안을 가결했다. 지난 22일부터 이날 오후 6시까지 모바일 전자투표로 임시총회를 열어 찬성률 81.92%로 통과시켰다. 조합원 4008명 가운데 74.8%(2998명)가 참여해 2456명이 찬성했다. 조합원 1인당 기본 20만 원을 특별부과금으로 걷고 쟁의 상황에 따라 한 차례에 한해 최대 10만 원을 추가 징수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원이 최대 금액을 납부하면 약 12억 원이 모인다. 노조는 이 돈을 파업 참여자의 임금 손실 보전과 쟁의 과정의 법적 분쟁 대응에 쓸 계획이다.
노조는 항고심 결정 직후 26일부터 3주간 예정했던 총파업을 잠정 연기하고 전면 파업 대신 일부 직군 중심의 파업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박재성 위원장은 "파업에 참여할 직군과 담당 업무를 내부적으로 선별하고 있다"며 "전체 조합원이 쟁의기금 조성에 참여해 실제 파업 참여자의 임금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노조는 회사에 투표 결과를 공유하고 교섭 재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 일정은 사측 입장을 들어본 뒤 최소한의 기간을 두고 통보하는 방식으로 정할 방침이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