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북항 친수공원에 나타난 길이 3m가량의 상어 ‘부캉이’를 보기 위해 현재까지 170만 명이 넘는 시민과 관광객이 몰렸다. 도심 속 야생이 얼마나 특별한 경험인지 보여준 장면이다. 그러나 한동안 부캉이는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인공수로에 머물렀고, 시민들은 환호하면서도 무사히 돌아가기를 바랐다. 이제 동물원은 볼거리를 넘어 동물의 삶까지 고민해야 한다.
부산시는 6년 넘게 문을 닫았던 초읍 어린이대공원 동물원, 옛 삼정더파크를 약 478억 원에 인수했다. 이를 자연 서식지형 숲 동물원으로 재구성하고 영남권 거점 동물원 지정도 추진한다. 그러나 가파른 지형과 제한된 부지에 다양한 동물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넓은 활동 공간과 무리 생활이 필요한 대형 동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필자는 그 대안으로 ‘분산형 동물원(Distributed Zoo)’을 제안한다. 하나의 울타리에 모든 동물을 모으는 대신, 하나의 운영 본부와 도시 곳곳의 서식지 거점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종별 생태에 맞는 환경을 제공하고, 거점별 사육사와 수의사가 전문성을 쌓는다. 만지고 먹이를 주는 체험보다 동물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관찰하고 배우는 교육에 집중한다.
영국 런던동물학회는 1931년 런던 외곽에 약 243ha의 ‘휩스네이드 동물원’을 열었다. 호주 타롱가 동물원은 1977년 내륙 도시 더보에 약 300ha의 ‘웨스턴플레인스 동물원’을,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은 1972년 외곽에 약 728ha의 ‘사파리파크’를 조성했다. 모두 하나의 운영 주체가 입지별로 역할을 나눈 모델이다.
부산형 분산형 동물원은 여기에 갈 곳 잃은 동물을 보호하는 ‘거점 생크추어리’ 기능을 더해야 한다. 2027년 말 야생동물 전시 유예기간이 끝나면 야생동물카페 등에 있던 동물의 보호와 이전 문제가 본격화한다. 김해의 한 동물원에서 ‘갈비 사자’로 불리던 바람이가 청주동물원으로 옮겨진 사례는 적합한 서식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부산이 영남권 구조 동물의 치료와 보호를 맡는다면 거점 동물원의 공공적 역할도 커진다.
땅은 새로 사들이기보다 유휴공간에서 찾아야 한다. 도심 외곽의 유휴 공공부지와 폐교 등은 대형 서식지와 생크추어리 후보지가 될 수 있다. 야생 수달이 사는 온천천, 철새가 찾는 을숙도, 북항 수변은 동물을 새로 들이지 않고도 관찰 거점이 된다. 생태 해설과 디지털 도슨트만 더하면 자연을 배우는 공간이 된다.
분산형은 운영 방식의 선택지도 넓힌다. 거점별로 기능이 나뉘면 시설 특성에 맞게 참여 주체를 달리할 수 있다. 종 보전과 구조·치료는 공공이, 교육 프로그램은 대학과 환경단체가, 체류형 편의시설은 민간이 맡고, 기업 사회공헌과 시민 후원도 거점 단위로 잇는 식이다. 시가 막대한 건설비와 운영비를 한꺼번에 떠안지 않아도 된다.
다만 민간 참여가 시의 매수 의무로 되돌아온 더파크의 전철은 처음부터 막아야 한다. 거점별로 책임을 나누고 단계마다 성과를 검증하면 예산 리스크는 줄이고 지속 가능성은 높일 수 있다.
추진은 단계적이어야 한다. 먼저 초읍을 숲 생태원과 구조·치료, 종 보전을 맡는 통합 본부로 재개장한다. 이어 도심 관찰 거점을 연결하고, 외곽 대형 서식지와 생크추어리는 타당성 검토와 인허가를 거쳐 중장기 과제로 추진한다. 방역과 전문 인력은 본부가 통합 관리한다. 또한 관람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한자리에서 모든 동물을 보는 대신 한 곳에서 한 종을 깊이 만나는 ‘느린 관람’이다. 부산의 새 공립동물원이 ‘가두어 보여주는 곳’에서 ‘도시와 야생이 만나는 곳’으로 거듭난다면, 478억 원은 과거 실패의 정리 비용이 아니라 새로운 동물원 모델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