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물고기가 바꾼 해양 질서

입력 : 2026-11-01 17:5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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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 한국수산자원공단 이사장
대구·명태·메로 어장 갈등 국제 규범 형성해
기후변화로 수산자원 이동 기존 경계 무너져
부캉이, 바다 변화 상징… 인간과 공존 숙제

세상의 질서를 바꾸는 것은 전쟁과 외교, 기술과 자본만이 아니다. 우리가 시장에서 흔히 만나는 물고기도 국가의 경계를 둘러싼 갈등을 일으키고, 적대국 사이에 협력을 이끌며, 국제 거래의 규칙을 바꾸어 왔다. 바다의 역사를 물고기의 눈으로 읽으면 해양 질서가 만들어지는 또 다른 과정이 보인다.

장면 1. 아이슬란드와 영국 간에는 1958년부터 1976년까지 대구 전쟁이라 불리는 어업 분쟁이 있었다. 당시 국가 운영을 어업에 크게 의존하던 아이슬란드가 자국의 어업 전관 수역을 확대하고 영국 어선의 조업을 금지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세 차례에 걸친 충돌은 급기야 군사적 대치로 이어졌고 아이슬란드 측은 영국과의 국교 단절을 선포하고 NATO 탈퇴를 시사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나, 영국이 아이슬란드의 200해리 어업 수역을 수용하면서 양국 간의 갈등이 마무리되었다.

장면 2. 북극해 안쪽에는 네덜란드 탐험가 빌럼 바렌츠의 이름을 딴 바렌츠해가 있다. 이곳에는 거대한 대구 어장이 형성되어 있고 유럽의 중요한 수산 식품 공급원이다. 노르웨이와 옛 소련은 냉전이 엄중했던 시기였고 해양 경계도 합의되지 않았던 1975년, 양국 간에 어업 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공동 수산위원회를 구성하여 대구를 비롯한 바렌츠해 수산자원의 총허용어획량과 국가별 할당량, 관리 조치를 합의해 오고 있으며 지금도 매년 40억 달러에 이르는 어획고를 올리고 있다. 양국 간의 최종 해양 경계는 36년이 지난 2011년에야 확정되었다.

장면 3. 북태평양에는 미국과 러시아의 경계가 맞닿아 있는 바다가 있다. 러시아 탐험가 비투스 베링의 이름을 딴 베링해이다. 베링해 가운데에는 도넛홀이라고 불리는 미국과 러시아의 배타적경제수역에 둘러싸인 공해역(High Seas)이 있다. 이곳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 어선이 1980년대부터 명태를 잡았지만 자원이 급감하면서 1993년 조업이 중단되었고, 이듬해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미국·러시아·중국·일본·폴란드 등 6개국은 ‘중부 베링해 명태 자원 보존 관리 협약’을 체결했다.

장면 4. 속칭 메로라 불리는 남극해의 이빨고기 어업은 어획량뿐만 아니라 어획 이후의 관리가 국제무역 규범으로 확대됐다. 불법·비보고·비규제 어업(IUU)이 이빨고기 자원을 위협하자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는 1999년 어획 증명 제도를 채택하였다. 어획한 이빨고기의 양륙과 국제 거래에 어획 위치와 선박 정보 등을 확인하는 서류가 포함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국제기구를 통해 불법 어업 행위 뿐만 아니라, 불법으로 어획된 수산물이 시장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규범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외에도 고래 등 해양생물들이 세계 역사에 미친 사례는 매우 많다. 물론 생물 자체가 인간의 역사를 만든 것은 아니다. 대부분 인간이 바다에서 벌인 활동, 특히 과도한 어획 활동의 결과이거나 그 이익 배분에 관한 것이고, 그러한 의사결정에는 과학적 증거와 지식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곤 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많은 연구가 해양 생물의 분포가 극지 방향이나 더 깊고 차가운 수역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물고기가 과거의 생태계를 벗어나 국가 간 경계를 넘으면 과거의 어획 실적과 분포에 기초한 이용이나 관리는 새로운 도전을 받는다. 기존 조업국과 새롭게 자원을 공유하게 된 국가 사이에 권리와 책임을 조정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고기들이 또다시 새로운 해양 질서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우리나라도 참여한 중앙북극해 공해상 비규제어업 방지협정은 2021년 발효했다. 해빙 감소로 접근 가능성이 커지는 바다에서 충분한 과학적 근거와 관리 체계 없이 상업 어업을 시작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자원이 감소한 뒤 조업을 멈춘 베링해의 경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방적 조치가 처음으로 적용되어 이용 확대에 앞서 보전의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얼마 전 부산항에 나타난 상어 한 마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바다로 돌려놓았다. ‘부캉이’다. 시민들은 상어에 이름을 붙이고 그 모습을 보려고 북항을 찾았다. 관계 기관이 상어의 건강 상태를 살피며 바다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다. 다행히 부캉이는 이제 자신이 더 익숙한 바다로 돌아간 듯하다.

하지만 이 상어 한 마리가 던진 메시지는 간단치 않다. 부산 북항과 같은 많은 배와 화물이 오가는 항구도 여전히 바다 생명과 인간의 공존이 필요한 공간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우리가 깊이 인식하지 못한 사이 크게 변한 바다가 이제 우리 눈앞까지 그 자연 질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아마 이런 예사롭지 않은 현상들은 더 자주 더 많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물고기들이 그랬듯이 새로운 해양 질서를 만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