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범에게 희망을] 상. 갈 곳 없는 아이들

입력 : 2013-07-09 10:50:46 수정 : 2013-07-09 14: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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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없어 판결도 못 내리고…보호처분 끝나자 거리로 내몰려

부산에 갈 곳 없는 범죄청소년을 보호하는 시설이 부족해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사진은 부산청소년자립생활관 모습. 부산일보DB

명진이(가명·16)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술을 자주 마시는 아버지는 명진이에게 관심이 없었다. 새엄마라며 아줌마들을 수시로 집에 데리고 왔다. 하지만 새엄마들은 금방 집을 나갔다.

명진이는 13살 때 집에 먹을 것이 없어 자동차 창문을 부수고 1만 7천 원을 훔쳐 삼각 김밥과 라면을 사먹었다. 절도 혐의로 재판을 받아 1호 처분이 내려졌다.

1년 동안 위탁 가정에서 생활하다 보호처분이 끝날 때쯤 명진이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다. 명진이를 데려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규정상 위탁 가정에서 나올 수밖에 없던 명진이는 가정과 거리에서 방황하다 다시 절도를 했고, 이번에는 소년원 처분을 받았다. 소년원 생활을 마치자, 이번에는 아버지가 명진이를 데려 가겠다고 했다. 한부모 가정에 지원되는 아파트 때문이었다. 현재 명진이는 집을 나가 연락이 끊긴 상태다.

'혐오시설' 반대 민원
건축 허가 어려워 방치
보호 처분 기관은 한계
비행청소년에 무관심
범죄 빠지는 악순환



■시설 없어 판결 못 내리기도

범죄 청소년은 대개 소년법에 의해 10가지 보호처분 가운데 하나를 받는다. 이때 소년원 처분 전 단계의 처분을 받은 청소년들은 가정 또는 위탁가정이나 보호시설에서 지내면서 보호관찰이나 사회봉사 명령 등을 수행한다.

이 중 부모의 이혼이나 사별 등으로 성인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거주할 곳이 마땅치 않다. 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전체 범죄 청소년 중에 약 20%가 부모 중 한 명이나 두 명 모두 없다.

소년보호처분 중 1호(보호자 또는 보호자를 대신해 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감호 위탁)와 6호(아동복지시설 등 소년보호시설에 감호 위탁) 처분을 받으면 가정이나 법원이 위촉한 위탁 가정 혹은 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한다. 부산에는 총 6곳의 위탁가정이 1호 시설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6호 시설은 두 곳의 여자 청소년 시설만 있다. 범죄 청소년의 다수를 차지하는 남자 청소년을 위한 시설은 부산에선 전무한 실정이다. 전국의 6호 시설은 대구·경북 4곳 등 총 10여 개가 있다.

부산가정법원은 대전의 효광원을 6호 시설로 위촉했지만, 정원이 찼을 경우 6호 처분을 내릴 수 없다. 실제로 지난 6월 이곳은 정원이 150명이지만, 160명이 위탁돼 당분간 소년들을 받지 못한다고 법원 측에 알려왔다.

부산가정법원 천종호 판사는 "6호 시설이 부산에 설치되면 부산 뿐만 아니라 창원, 울산의 청소년들도 혜택을 받는다. 하지만 혐오시설이라 반대하는 민원 때문에 건축 허가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거리에서 다시 범죄로

보호처분 기간에 범죄 소년들의 주거를 해결하는 기관의 형편은 열악하다. 대부분 민간인이 운영하고 있어 재정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에서 일부 운영비를 지원받지만, 주로 후원금에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용 인원도 한계가 있다.

부산의 경우 소년원에서 임시 퇴원한 청소년 중 거주지가 마땅치 않을 때는 (재)한국소년보호협회가 운영하는 청소년자립생활관 등에서 생활한다. 이곳의 정원은 17명이다.

1호 처분 시설의 수용인원은 1곳당 8~10명으로, 이들 기관에서 수용하는 청소년을 합하면 80명이 채 안된다.

범죄 소년들이 이들 기관에 있을 때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보호처분이 끝난 후에는 돌아갈 가정이 없어 다시 거리 생활을 하다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서 소개한 명진이도 그런 경우다.

국가가 청소년에게 주거와 숙식을 지원하는 청소년 쉼터는 주로 범죄 경력이 없는 가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가정의 기능이 약한 비행청소년을 위한 시스템은 없는 형편이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홍선영 박사는 "집과 위탁 가정 혹은 보호시설에 적응하지 못한 다수의 비행 청소년들이 찜질방이나 여관 등을 전전하다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에 붙잡히거나 보호 처분 후에도 갈 곳이 없어 생활비를 위해 다시 범죄나 성매매에 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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