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고 했던가. 그는 첫눈에도 어질고 사람 좋아 보였다. 부창부수. 그의 한국인 아내 역시 참하고 단정해 보였다. 경남 양산시 물금읍 E아파트 그의 집에서 그와 그의 아내를 함께 만났다. 대학에서 영어학을 전공한 그녀가 통역을 맡아 줬다. "부산서 오느라 수고 많았다"며 그가 손수 타 준 냉커피 맛이 그럴싸했다.
한국의 산이 좋아 정착 15년째
2007년 친구와 백두대간 종주 성공
직접 쓴 '영문안내서' 2쇄까지 찍어 앤드류와 로저의 공저
낙동정맥 트레킹 20주 만에 완주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모두 정복
한국 산 소개 홈피 운영·책 준비
■백두대간 종주 후 안내서 펴내
뉴질랜드인 앤드류 더우치(Andrew Douch) 씨는 국내 산악인들 사이에 제법 유명한 사람이다. 산을 잘 타기로 소문났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산을 가슴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에서 20, 30대 청춘을 다 보낸 것은 오로지 한국의 산하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의 조국 뉴질랜드에는 한국보다 훨씬 광활하고 야생이 살아 있는 산들이 많을 텐데 왜 하필 한국의 산에 '필'이 꽂힌 걸까?
"뉴질랜드 산에는 산 그 자체밖에 없어요. 그런데 한국의 산은 달라요. 산뿐만 아니라 산에 사는 사람이 있고 다양한 문화가 있고 이야기가 있어요."
그는 한국의 산은 봄·여름·가을·겨울 네 계절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는데 뉴질랜드 산에는 사시사철 푸름만 있는 것도 큰 차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단순히 산을 '잘 타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문 산악인은 더더욱 아니다. 그의 직업은 영어 강사. 그는 아마추어 산악인이지만, 산을 정말 좋아할 뿐만 아니라 산에 대한 인문학적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는 2010년 친구 로저 셰퍼드와 함께 국내에서
이 책은 앤드류와 로저가 지리산에서 향로봉까지 남쪽 백두대간(740㎞)을 꼬박 70일간 종주한 뒤 한국의 삼림문화를 소개한 가이드북이다. '산악문화를 통한 한국의 아이덴티티 탐구'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수많은 사진을 찍고, 그 사진들을 토대로 자료조사를 거쳐 스토리를 입힌 새로운 차원의 백두대간 안내서다.
■낙동정맥도 완주
2000년 한국에 처음 온 앤드류는 1년 뒤 뉴질랜드로 돌아갔다가 2003년 다시 한국에 왔다. 원래 트레킹을 좋아한 그가 소백산을 등산할 때였다. 커다란 배낭을 멘 등산객들로부터 "백두대간 간다"라는 말을 듣고 처음 백두대간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 뒤 등산 친구 로저와 의기투합해 2007년 함께 백두대간 종주를 마쳤다.
그는 충북 황학산 괘방령 산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그날은 바지도 찢어지고 몹시 힘든 등산을 한 날이었다. 날은 어둡고 잘 곳도 마땅찮았다. 그런데 마침 괘방령 산장이 신축 중이어서 인부들에게 음식과 막걸리를 푸짐하게 얻어먹고 숙소까지 제공받았다.
"그때 한국인들의 정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그 뒤로 1년에 한 번은 꼭 그곳에 가서 자고 오곤 합니다."
백두대간 등정을 통해 한국 산의 매력에 푹 빠진 앤드류는 2009년 혼자서 낙동정맥 트레킹에 나섰다. 주말만 되면 산을 찾아 부산 몰운대~태백시의 구봉산까지 450여㎞를 20주 만에 완주했다. 길을 잃어 헤매기도 하면서 하루 최고 37㎞까지 걷는 강행군을 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낙동정맥이 백두대간보다 더 흥미로웠어요. 부산~울산은 시티 하이킹 구간이라 도시 산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 주왕산~태백산 구간은 원시적인 조용함 속에 혼자 걷기에 정말 좋았어요."
낙동정맥을 완주한 앤드류는 내친김에 산림청 선정 '한국의 100대 명산'에 도전했다. 그는 2015년까지 불과 4년 만에 청량산, 월악산, 속리산, 울릉도 성인봉 등 100대 명산을 '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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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옥스팜 트레일워커(구례) 완주 기념 사진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