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우크라이나 전쟁 1년, 세계는…

입력 : 2023-03-25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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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코스티안티니우카의 한 주민이 15일(현지시간) 포격으로 화재가 발생한 주택 앞에 서있다. 최근 러시아는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등 동부전선에서 화력을 높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코스티안티니우카의 한 주민이 15일(현지시간) 포격으로 화재가 발생한 주택 앞에 서있다. 최근 러시아는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등 동부전선에서 화력을 높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지났다. 유럽에서 강대국의 노골적인 침략 전쟁이 일어난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여 년 만에 처음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살인과 고문, 강간과 아동 납치 등 21세기 가장 추악한 반인륜적 범죄 전장으로 추락했다. 평화와 번영이란 유럽의 꿈도 사그라지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유럽 국가들은 군사력 증강, 동맹국과 협력 강화와 함께 징병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신냉전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것이다.


■냉전 종식으로 모병제로 전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991년 소련 해체로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사라지면서 냉전이 종식됐다. 나토 회원국 대부분은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체코를 필두로 동유럽 국가들이 북대서양조약 기구(NATO)의 집단방위체제에 편입되면서 유럽의 안정성을 높인 것도 모병제 도입에 영향을 끼쳤다. NATO 및 EU, UN과의 동맹 체제가 강화되면서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거나, 군비 경쟁 필요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27개 EU 회원국 중에서는 1995년부터 벨기에를 시작으로 네덜란드(1997), 프랑스(2001), 스페인(2002), 슬로베니아(2003), 포르투갈(2004) 등 서유럽 국가들이 모병제를 도입했다. 이어서 동유럽 국가인 슬로바키아(2006), 루마니아·라트비아(2007), 불가리아·크로아티아·리투아니아(2008), 폴란드(2009)가 차례로 모병제로 전환했다. 중립국 스웨덴은 2010년 모병제로 돌아섰다.


독일은 레오파드2 1개 중대 규모 14대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지난해 10월 17일 독일 북부 오스텐홀츠의 연방군 군사기지에 레오파드2 전차를 배경으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독일은 레오파드2 1개 중대 규모 14대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지난해 10월 17일 독일 북부 오스텐홀츠의 연방군 군사기지에 레오파드2 전차를 배경으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신냉전 시대, 다시 징병제로 돌아서

유럽의 봄은 20년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2010년대 들어 러시아가 조지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안보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각 국가가 징병제로 속속 돌아섰다.

우크라이나, 조지아는 물론이고,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거나 반러시아 경향이 강한 리투아니아(2015), 노르웨이(2016)에 이어 스웨덴도 8년 만에 징병제를 부활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스웨덴은 2014년 국적 미상의 잠수함이 스웨덴 연안 스톡홀름 군도 쪽에서 출몰하면서 안보 위기감이 높아졌다. 라트비아도 2007년 폐지됐던 징병제를 15년 만에 부활시켰다. 이들 국가는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러시아의 희생양이 될 우려가 크다는 공통점이 있다.

프랑스도 18~21세 남녀의 단기 군사 훈련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과 불가리아, 네덜란드, 이탈리아도 검토 중이란 소식이다. 최근 독일 정치인들은 “독일이 병역 의무를 중단한 것은 실수”라고 주장할 정도다. 폴란드는 2009년 옛 소련 시절 잔재라는 이유로 징병제를 폐지했으나, 5년 안에 병력을 현재 14만 3500명에서 30만 명으로 2배 이상 증강하고, 징병제 부활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13일(현지시간) BMP 장갑차를 타고 동부 돈바스 지역의 격전지 바흐무트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바흐무트에서는 러시아군이 북쪽, 동쪽, 남쪽 3면에서 포위망을 좁혀가고 우크라이나가 결사항전으로 맞서면서 양측 사상자가 급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13일(현지시간) BMP 장갑차를 타고 동부 돈바스 지역의 격전지 바흐무트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바흐무트에서는 러시아군이 북쪽, 동쪽, 남쪽 3면에서 포위망을 좁혀가고 우크라이나가 결사항전으로 맞서면서 양측 사상자가 급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안보 예산 증액과 무기 확보 나서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은 군비 지출을 늘리며 미국산 무기로 무장하고,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핵심은 징병제 전환에 이어, 방위비를 증가시키고 새로운 군사 장비를 확보하는 것. NATO가 정한 대로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하고, 경우에 따라 원래 계획보다 몇 년 앞서 목표를 달성하기로 상호 약속했다.

제2차 세계대전 가해국으로 국방 분야를 방치했던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강력하고 최첨단의 혁신 군대를 만들겠다”면서 재무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독일은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2%로 지속해서 확대할 계획이다. 독일 하원은 지난해 6월 미국산 F-35 스텔스 전투기 35대 도입 등 1000억 유로(약 134조 원) 규모의 특별방위기금 조성안을 승인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우리 대륙 역사의 전환점”이라면서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안보에 훨씬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국산 레오파드2 전차를 우크라이나에 보내기로 했다. 미국의 에이브럼스 탱크와 독일의 레오파드2 탱크, 영국의 열화 우라늄탄이 장착된 챌린저 2 탱크까지 실전에 배치되면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이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프랑스도 국방 예산을 2019∼2025년 2950억 유로(약 395조 원)에서 2024∼2030년 4000억 유로(약 553조 원)로 7년간 36% 증액하기로 했다.


미군 병사들이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인접국인 폴란드 서부 포즈난의 미군 캠프 코시우스코에서 폴란드내 첫 미군 영구 주둔기지 개소 행사를 하고 있다. 새로 설치된 미군 부대는 미 육군 제5군단의 폴란드 본부가 된다. AFP=연합뉴스 미군 병사들이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인접국인 폴란드 서부 포즈난의 미군 캠프 코시우스코에서 폴란드내 첫 미군 영구 주둔기지 개소 행사를 하고 있다. 새로 설치된 미군 부대는 미 육군 제5군단의 폴란드 본부가 된다. AFP=연합뉴스

■폴란드, 자국 내에 미군 영구 주둔 기지 개소

우크라이나와 530여㎞의 국경을 맞대면서 서방 무기 지원 최전선 보급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폴란드는 2023년 국방예산을 GDP의 4% 이상으로 올렸다. 폴란드는 미국에서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 M1A1 에이브럼스 전차 등을, 한국에서도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K239 다연장로켓 천무 등을 구매키로 하면서 군 현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22일에는 폴란드 역사상 처음으로 미군 영구 주둔 기지 캠프 코시우스코 개소식이 열렸다. 지역 내 군사력 증강과 동맹 강화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러시아의 침공을 “평화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폴란드는 그동안 미국 정부에 나토군의 일시 순환 배치 대신 자국 내에 미군을 영구 주둔시킬 것을 지속해서 요청해왔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유럽방위청(European Defense Agency)의 2023년 예산 증액을 2022년에 비해 15% 증액했다. 대부분 러시아의 군사 능력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장비를 구입하는 용도다. 이러한 군비 경쟁 확산은 유럽 국가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며 새로운 위기 발생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확전이다. 장기전은 필연적으로 다른 국가들마저 수렁으로 끌어당긴다. 제1차 세계대전 때도 4년간 30개국이 차례로 뛰어든 대전쟁으로 확대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병참 기지인 폴란드를 공격한다면, 세계대전으로 불이 옮겨붙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유럽 국가가 징병제 전환에 이어 군비 경쟁에 뛰어든 것은 우크라이나전이 ‘그들만의 전쟁’에서 ‘모두의 전쟁’으로 옮겨갈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크렘린궁내 그라노비타야궁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모스크바 로이터=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크렘린궁내 그라노비타야궁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모스크바 로이터=연합뉴스

■신냉전은 한반도에도 위기

중국 시진핑 주석은 21일 모스크바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이후 긴밀한 중·러 안보경제협력을 기반으로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양국 정상은 “북한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우려와 북한 문제 공조를 재확인한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다극화된 국제 질서는 한반도와 대만 안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만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의미한 성공을 거둔다면, 이는 중국을 고무해 대만 침공을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전선을 펼치고 있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대만해협까지 군사력을 전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군과 외교 일각에서는 중국이 한국과 일본 주둔 미군의 대만 이동을 막기 위해 한·일 미군기지를 선제공격하는 가상 시나리오까지 거론되고 있을 정도다. 만약 한국이나 일본의 미군기지가 공격당할 경우 미군의 안보 지원에 의존하는 동맹국인 두 나라가 외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과연 한국과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작전체계는 물론이고, 미군과 공감을 갖고 있을까. 여기에 연일 이어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까지 더해지면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이 아시아에서까지 심각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안상욱 교수는 “시진핑 주석이 러시아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영원한 파트너’라고 약속한 만큼, 당분간 서방 대 중·러 구도로 국제 질서가 급변할 것”이라면서 “한국도 단기적으로는 위험 헤징 전략을 쓰면서도, 미래를 위한 외교와 안보를 지금부터라도 준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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