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방송계에서 ‘셰프’들이 나와 요리를 하는 ‘쿡방’이 대세였다면, 최근엔 ‘피지컬’ 방송이 대세입니다. 운동선수들이 축구, 골프, 씨름으로 승부를 겨루는 콘텐츠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대놓고 일대일 힘겨루기를 펼치는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100’은 글로벌 히트를 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공개된 ‘범죄도시3’와 ‘사이렌:불의 섬’은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인기몰이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5월 31일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3’는 피지컬 끝판왕 배우 마동석이 맨주먹으로 범죄자들을 때려잡는 내용입니다. 또 지난달 30일 공개된 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사이렌:불의 섬’은 여자판 ‘피지컬:100’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액션·코믹 한층 강화된 ‘범죄도시 3’
“제발 사형시켜라.”
근래 들어 범죄 관련 인터넷 기사를 읽을 때마다 쉽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피해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은 가해자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일이 반복되는 탓에 시민들의 인내심이 바닥난 겁니다. 수사과정에서도 피해자의 알 권리는 뒷전이고, 구치소에 갇힌 가해자가 뻔뻔하게 ‘보복’을 다짐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범죄도시’ 같은 영화가 사랑받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입니다. ‘범죄도시’는 괴물 형사 마석도(마동석)가 흉악하고 파렴치한 범죄자들을 맨주먹으로 때려잡는 영화입니다. 2017년 개봉한 ‘범죄도시 1’은 688만 명이 관람했고, 지난해 5월 개봉한 ‘범죄도시 2’는 1269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습니다.
지난달 개봉한 ‘범죄도시 3’는 확장된 스케일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서울 광역수사대로 자리를 옮긴 마석도 형사는 일본 야쿠자와 중국 삼합회까지 연루된 마약 카르텔을 수사합니다. 상대해야 할 ‘빌런’(악당)도 주성철(이준혁)과 리키(아오키 무네타카) 2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자연스레 액션의 강도는 높아지고 빈도도 늘어났습니다.
영화의 핵심 재미 요소는 역시 마석도의 맨주먹 액션입니다. 펀치 한 방에 ‘나쁜 놈’들이 나가떨어지는 장면은 관객에게 희열을 선사합니다. 주먹이 꽂힐 때마다 귀를 때리는 묵직한 타격음이 통쾌함을 더합니다. 기자는 4DX 포맷으로 관람했는데, 액션과 함께 의자가 흔들릴 때마다 타격감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인권 보호를 믿고 경찰서에 끌려와서도 설쳐대는 범죄자를 완력으로 ‘참교육’시키는 모습은 시리즈에서 빠질 수 없는 묘미입니다.
전작과 비교했을 때 3편이 가지는 특징은 액션과 코미디의 빈도 증가입다. 마약 카르텔이 곳곳에서 연거푸 범죄를 저지르고, 마석도는 이들을 추적하면서 쉴 새 없이 주먹을 휘두릅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단도를 휘두르는 야쿠자들도 마석도의 펀치를 당해낼 순 없습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배우 마동석이 오랫동안 연마해온 복싱 액션이 눈길을 끕니다. 커다란 덩치로도 칼과 주먹을 민첩하게 피하고 정확하게 훅을 날리니 조폭 똘마니 서너 명 정도는 상대도 안 됩니다.
시리즈 특유의 유머는 이번에도 통합니다. 마동석만 구사할 수 있는 무덤덤한 농담이 웃음을 유발합니다. “폭력에서 권위가 생긴다”는 유튜버 ‘침착맨’의 농담처럼, 건방지던 악당들도 마석도의 주먹맛을 보자 겸손해집니다. 상영관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려 맘 편히 함께 웃을 수 있었습니다. 조연인 고규필과 전석호는 ‘하찮은 악당’을 제대로 연기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스토리는 역시 단순하고 직관적입니다. 권선징악이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중심으로 나쁜 놈들을 징벌합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킬링타임 영화로 손색이 없습니다.
마동석은 언론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마석도 캐릭터에게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첫 번째는 카타르시스인 것 같다”며 “마음속으론 마석도처럼 (깡패를) 응징하고픈 마음이 있지만 법 때문에 인내하는데, (마석도를 보면서) 한풀이가 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상당수 관객들은 시원하게 얻어터지는 악인들을 보고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호평했습니다.
다만 전작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관객도 적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공감을 얻는 지적은 “빌런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주성철과 리키는 권총과 장검까지 휘두르는 극악무도한 인물로 그려졌는데, 마석도가 전작에 비하면 큰 어려움 없이 이들을 해치우는 것처럼 느껴져 존재감이 약하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기자의 경우 주성철이라는 캐릭터의 설정 자체가 설득력과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역의 매력이 떨어져서인지 임팩트 한 방이 부족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범죄도시’ 시리즈 메인 빌런들은 특정 대사가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이 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1편에서는 ‘장첸’(윤계상)이 “혼자 왔니” 등 명대사를 탄생시켰고, 2편의 ‘강해상’(손석구)이 남긴 “너 납치된 거야”는 숱한 패러디를 탄생시켰습니다. 반면 3편에서 배우 이준혁이 연기한 ‘주성철’은 딱히 기억에 남는 대사가 없습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도 과제입니다. 마석도가 나쁜 놈들을 주먹으로 무찌른다는 단순한 스토리가 이제는 단조롭고 식상하게 느껴진다는 혹평이 눈에 띕니다. 여성 캐릭터의 부재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도시’의 오락성 하나 만큼은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으뜸가는 수준입니다. 청소년 관람불가인 2편에 비하면 잔혹성을 훨씬 덜어내 접근성도 좋아졌습니다. 관객들의 반응도 좋은 편입니다. 실 관람객의 평가가 반영된 CGV 골든에그 지수는 2일 오전 현재 95%를 기록 중입니다.
3편을 보고 나면 곧바로 4편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이 나옵니다. 시리즈 제작자이기도 한 마동석은 ‘범죄도시’를 8편까지 만들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진한 피지컬 서바이벌 ‘사이렌: 불의 섬’
소방, 운동, 스턴트, 경호, 군인, 경찰. 힘깨나 써야 한다는 여섯 개 직업군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들이 팀을 이뤄 승부를 펼칩니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사이렌:불의 섬’은 ‘여자판 피지컬:100’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지의 섬에 모인 여성들이 직업군별로 4명씩 팀을 꾸려 피지컬 한판 승부를 펼치고, 상대 기지를 점령하는 게임입니다. 기지 점령 과정에서는 당연히 몸싸움이 벌어집니다.
“나보다 센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서 왔다”는 참가자들은 과연 자부심과 경력이 대단합니다. 너무 힘든 탓에 남자 소방관들도 참가 자체를 꺼리는 ‘최강소방관’ 대회에 처음 도전했던 김현아 소방교, 여성 최초 대통령 경호원 이수련,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휩쓴 유도 국가대표 김성연,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707 특수임무단 출신이자 유튜버로도 익숙한 ‘깡미’ 등 각 분야 엘리트들을 한 데 모았습니다. 이들은 7일간 외부와 단절된 채 다양한 한계를 경험합니다.
1화는 선착순으로 1km 달리기 경주를 펼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경주 장소가 갯벌인 것이 문제입니다. 웬만한 남성도 지쳐 중도 포기할 법한 과제도 주어지지만 모든 팀이 수행해냅니다.
이후로는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집니다. 피지컬로 대결을 펼쳐 승자가 생존한다는 개념 자체는 ‘피지컬:100’과 유사하지만, 성별을 여성으로 제한한 점 말고도 여러 면에서 차별점을 뒀습니다. 우선 밀폐된 공간에서 게임을 진행해 ‘오징어게임’과 유사하게 연출된 ‘피지컬:100’과는 달리 땡볕이 내리쬐는 무인도에서 진행돼 훨씬 야생적인 분위기를 풍깁니다.
가장 큰 차이는 기지 점령전으로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는 점입니다. 불시에 섬 전체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면 참가자들은 상대팀 기지를 공격할 수 있고, 가장 먼저 수비 깃발을 뺏겨 점령당하는 팀은 곧바로 탈락합니다. 전투 과정에선 타격을 제외한 몸싸움과 기물 파손이 허용됩니다. 매일 대형 아레나에서 펼쳐지는 피지컬 대결에서 승리한 팀에겐 점령전에서 유리하게 써먹을 수 있는 이득이 주어집니다.
‘사이렌:불의 섬’은 2주 동안 총 10편의 에피소드가 공개됩니다. 지난달 30일 1~5편이 공개됐고, 각 회차당 러닝타임이 40분 안팎이라 큰 부담 없이 시청할 수 있습니다.
공개된 5편 중 초반부는 서로 탐색전을 펼치는 탓에 조금은 느슨한 느낌이 있습니다. 연출 역시 속도감이 있거나 타이트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회차를 거듭할수록 박진감이 커집니다. 특히 ‘사이렌:불의 섬’에서만 볼 수 있는 기지 점령전에선 꽤나 살벌한 몸싸움이 벌어져 긴장감이 상당합니다. 사력을 다하는 여성들의 힘 대결이 눈을 뗄 수 없게 합니다. 기지 점령전이나 아레나전에서 직업별 강점이 드러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팀전이다보니 상대팀을 공략할 수 싸움이 벌어지고, 동맹을 통해 서로의 관계가 얽히고설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직업군별 특징보다는 동맹 여부에 따라 유불리가 크게 갈리고, 특정 팀의 존재감이 약해지는 점은 아쉽기도 합니다. 또 윤성빈, 심으뜸, 추성훈 등 인지도 높은 유명인이 대거 등장하던 ‘피지컬:100’에 비하면 참가자들의 면면이 익숙하지 않아 개개인의 매력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아레나에서 펼쳐지는 대결은 충분히 힘들어 보이고 직관적이긴 하지만, 창의성이 가미됐다면 더 흥미진진했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소소한 아쉬운 점들은 있지만, 여성들의 피지컬 대결, 기지 점령전이라는 신선함과 몸을 아끼지 않는 참가자들의 분투가 자아내는 박진감은 ‘사이렌:불의 섬’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입니다.
연출을 담당한 이은경 PD는 지난달 제작발표회에서 “‘여자치고 잘한다’는 말을 절대 듣고 싶지 않았다.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이라며 “기존의 서바이벌이 남성 위주로 진행됐고 출연진의 직업군 자체가 남성들이 대표적이다. 본 적 없는 출연진이라 새로울 것 같다. 팀원들이 어떻게 연대해서 살아남는지가 포인트”라고 강조했습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