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의 ‘구원투수’로 차출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통령실이 21일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이면서 여권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인 한 위원장 체제가 출범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설’이 불거진 것이다. 양측 모두 사퇴요구설에 대해서는 일단 부인했지만,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의 최근 총선 공천 관련 행보에 대해 윤 대통령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는 점을 분명하게 전하면서 양측 간 갈등 전선이 형성된 것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내에서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한 위원장의 입장 변화가 충돌의 도화선이 됐을 것이라는 시각과 함께 최근 발표된 한동훈표 ‘공천 시스템’에 대한 친윤(친윤석열) 핵심의 불만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날 오후 일부 언론과의 통화에서 “한 위원장의 거취 문제는 용산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의 이런 반응은 이날 한 종합편성채널이 여권 주류 인사들이 최근의 공천 논란 등과 관련해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으며, 여기에 대통령실 의중도 반영돼 있다는 취지로 보도한 뒤 나왔다.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21일 시내 모처에서 한 위원장을 직접 만나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나 달라는 요구를 전달했다는 얘기가 구체적으로 나온다. 한 위원장은 해당 보도가 나온 직후 “국민 보고 나선 길, 할일 하겠다”고 했고, 국민의힘 측은 ‘사퇴 요구’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보도에 대한 입장이라고 일단 선을 그었다. 그러나 사퇴 요구 사실에 대한 적극적인 부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통령실이 공천 논란 등을 두고 한 위원장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은 맞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른바 기대와 신뢰 철회 논란과 관련해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강한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해 윤 대통령이 일부 공천 논란을 이유로 한 위원장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다는 점은 숨기지 않았다.
앞서 한 위원장은 지난 17일 명품 가방 의혹과 관련해 김 여사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한 김경율 비대위원이 서울 마포을에 출마한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는데, 일부 언론은 윤 대통령이 이 사태를 두고 한 비대위원장에 대한 기대와 지지를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 위원장이 김 비대위원 전략공천 가능성을 내비치긴 했지만, 공천관리위원회의 공천 심사가 이제 시작되는 단계이고 김 비대위원의 공천이 실제 이뤄진 것도 아닌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뢰’까지 언급하며 공천 문제를 직격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보다 직접적인 배경은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해법을 둘러싼 시각차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 위원장은 논란 초기에는 ‘몰카 공작’이라며 김 여사 측 입장을 두둔했으나, 김 비대위원과 일부 의원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최근에는 “국민 입장에서 걱정할 부분이 있었다”며 태도 변화를 보였다. 이에 대해 용산 측이 불편해 한다는 관측이 나왔다. 특히 해당 기사를 윤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수행실장을 지낸 친윤(친윤석열) 직계 이용 의원이 당 소속 의원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 링크를 걸어 공유하면서 이런 관측은 사실로 굳어졌다. 이 의원은 해당 보도 링크를 공유하기 전에는 명품 가방 논란과 관련해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 없다는 한 보수 유튜버의 주장 요지가 담긴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김 여사 문제에 대한 한 위원장의 입장 변화에 불만을 갖고 거취 문제까지 언급됐다면 상당한 역풍이 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명품 가방 의혹에 대해서는 여론 역시 상당히 부정적인 상황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현역 ‘컷오프’를 최소화하면서 경선을 통한 후보 배출을 기본으로 설정한 한 위원장의 ‘시스템 공천’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는 친윤 일각에서 한 위원장의 이 같은 입장 변화를 고리로 ‘뒤집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한 여권 인사는 “윤 대통령과 최측근 한 위원장이 비대위 출범 한 달 만에 불화설에 휩싸인 것은 충격적”이라면서 “이제 공천 국면인데 양측의 갈등이 길어질 경우 총선에 상당한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