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일궈온 ‘문화도시 영도’ 헛되게 하지 마라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입력 : 2024-10-05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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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성과 보여준 법정문화도시 사업
재정적 어려움 이유로 사업 종료 선언
지역소멸 등 해결 위해서도 지속 필요
사업 이어지도록 정책 변화 이뤄지길

영도문화도시센터가 주도한 각종 문화 사업. 사진은 장애인 자립 축하 파티 '똑똑똑 예술배달'의 댄스 공연. 영도문화도시센터 제공 영도문화도시센터가 주도한 각종 문화 사업. 사진은 장애인 자립 축하 파티 '똑똑똑 예술배달'의 댄스 공연. 영도문화도시센터 제공

2019년 부산 영도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제1차 법정문화도시에 선정됐다. 지난해 9월 7~10일 영도구는 전국문화도시 의장도시 자격으로 봉래동 물양장에서 ‘2023 전국문화도시 박람회 &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김기재 영도구청장은 “영도 문화도시 사업이 종료되더라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갈 조직과 공간 구축을 계획하고 있다”며 “이는 자발성에 기반한 문화도시 사업의 발전 가능성을 체감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영도구청은 내년부터 이 사업을 주관한 영도문화도시센터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밝혀 ‘문화도시 영도 사업’이 종료 위기에 처했다. 만약 김 구청장이 언급한 조직과 공간이 혹여 ‘영도문화도시재단’ 설립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재단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기에 문화도시 사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문화 지속성의 관점에서 영도 문화도시 사업을 절대 일몰(종료)해서는 안 된다. 사업 종료만이 능사가 아니다.


■문화도시 영도 5년간의 성과

영도구는 법정문화도시에 선정되면서 2020년부터 5년간(내년 2월 종료) 총사업비 160억 원(실제 집행은 140억 8000여만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이 예산은 국비 50%와 시비 및 구비 각각 25%로 구성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영도문화도시센터는 구민을 주요 문화 주체로 삼아 문화 자생력을 키우고, '예술과 도시의 섬, 영도'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고령화, 청년 감소, 환경오염 문제를 문화 프로젝트로 해결하고, 지역 이미지 개선을 위한 브랜딩 사업을 통해 주민들에게 영도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고자 했다.

지역 예술가들이 문화도시 사업을 계기로 협업하고, 어르신들은 산복도로, 깡깡이마을, 흰여울마을, 동삼동 등지에서 글쓰기, 그림 그리기, 도자기 만들기, 노래 부르기 등 다양한 문화 활동에 참여했다. 특히 센터에서 주도한 각종 문화 사업은 지역 주민들의 연대감을 강화하는 중요한 마중물이 됐다.

이전에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영도구 대평동 일대에 문화 예술을 입힌 깡깡이 예술마을 프로젝트 등 일련의 문화사업이 있었지만, 5년간의 법정문화도시 사업의 성과는 놀라웠다. 영도구의 특성을 살린 시각 브랜딩과 글자체(영도체) 개발로 국내 최초 세계디자인어워드 4관왕에 올랐고, 방문 예술활동·예술치유 공간 운영으로 외로움 완화에 기여해 문체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영도 기획자 학교를 운영하며 매년 30건 이상의 문화 창업 지원, 영도 문화유산 자료를 담은 아카이브 개설, 어린이 문화활동 거점 공간 조성, 깡깡이 예술마을 투어 프로그램 운영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3월에는 전국 24개 문화도시 중 ‘최우수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사업을 주관한 영도문화도시센터에 대한 평가도 놀랍다. 첫해인 2020년 미흡(3등급)에서 2023년 최우수(1등급)로 평가가 상승하는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었다. 문화도시 사업의 성과는 주요 도시 지표로도 확인됐다. 문화 분야 사업체 수와 거주 예술인 수가 크게 증가했으며, 2023년 부산사회조사에서는 구민의 문화여가시설 및 여가 활동 만족도가 원도심 중 1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많은 지역 주민이 “문화도시 사업 덕분에 영도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았다.

이처럼 문화도시 사업으로 지역 이미지를 향상하고 주민 삶을 개선하는 성과를 냈음에도 사업 종료 결정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영도문화도시센터가 2021년 펼친 문화공연 '특별한 60분' 프로젝트. 부산일보DB 영도문화도시센터가 2021년 펼친 문화공연 '특별한 60분' 프로젝트. 부산일보DB

■사업은 종료하면서, 재단은 만들겠다고

지난달 20일 열린 ‘2024년 영도문화도시 추진위원회’ 회의에서 영도구는 문화도시 사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추진위원들은 사업의 지속성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영도구는 “내년부터 정부 지원 예산이 없다. 문화도시 사업을 계속하려면 자체 예산을 투입해야 하지만 재정 여건 등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일몰의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김태만 추진위원장은 “사전 논의 없이 일방적인 통보였다”고 전했다.

영도구는 연간 30억 원의 예산 중 7억 5000만 원을 분담해왔으나, 이마저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영도구의 재정자립도가 9.3%로 열악한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9개월 전에는 영도문화도시재단을 설립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만큼, 단순히 예산 문제로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영도문화도시재단 설립의 취지는 좋지만, 초기 비용과 운영비가 더 많이 드는 재단 설립이 오히려 센터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한다. 이쯤 되면 구청의 예산난은 단순히 핑계에 불과하다는 의구심이 든다. 향후 재단을 설립하더라도 문화도시 사업의 성과를 고려했을 때 영도문화도시센터는 지속되면서 자연스럽게 재단으로 흡수·전환되는 게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문화는 지속성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문화도시 사업은 첫 5년이 끝난 후 지자체가 예산과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이를 알고 있는 영도구가 지난 5년간 후속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영도의 문화도시 사업의 성과와 기여를 무시하는 것은 부당하다. 지역 주민과 문화 활동가들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지역 문화 발전이 저해될 수 있다. 문화도시 사업이 종료되면 그동안 쌓아온 유·무형의 성과가 사라질 위험이 있다. 주민들과의 관계를 형성해온 만큼, 종료 결정은 지역 사회의 반발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주민들은 사업 종료 소식에 반발하고 있다. 김지영 영도구 의원은 “문화도시 사업을 계속할 의지가 있다면 일몰을 선언할 것이 아니라 지방 소멸 대응 기금을 활용한다든지 여러 방안을 모색하는 게 맞다”고 얘기한다. 부산문화재단과 부산시도 영도 문화도시 사업 활성화에 관심이 있어 얼마든지 연계도 가능하다.


■영도문화도시센터 가치 인정받아야

도시는 에너지가 넘칠 때 매력적이다. 도시는 사람들의 욕구를 이해하고 이에 부합하는 매력을 통해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도시의 고유한 역사와 환경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예술 콘텐츠를 생산할 때, 도시는 활력이 넘친다. 영도문화도시센터는 영도의 역사와 자연을 활용해 지속 가능한 문화유산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센터는 이를 통해 영도를 에너지 넘치는 곳으로 변화시켰다. 앞서 언급했던 성과가 이를 말해 준다.

영도 문화도시 사업은 전국적으로도 우수 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며, 주민 80%가 정책 지속을 원하고 있다. 김지영 의원은 이 사업이 영도와 같은 소멸 도시에서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업 진행 중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이를 통해 영도는 새로운 문화도시로 나아갈 수 있는 플랫폼과 인적 자원을 구축했다. 지난 5년간의 성과가 모두 사라질 경우, 문화정책의 특성상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지난 5년의 문화도시 사업으로 도시·문화적 자본이 축적됐다”며 “이 자본을 어떻게 활용할지 이제 고민할 때”라고 얘기한다.

문화 정책은 장기적 비전과 일관성이 필요하다.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은 주민과 문화 단체에 혼란을 주고 안정적인 문화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영도 문화도시 사업은 지역소멸 등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서도 지속되어야 한다. 센터는 영도 문화도시 사업을 지속가능하게 해 준 ‘중심 앵커’였다. 5년간 지역 문화에 기여한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전국적으로도 우수 사례로 손꼽히는 영도 문화도시 사업이 단지 재정적 이유로 중단된다면 이를 지속시키기 위한 재원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이를테면 지역 기업과의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자금을 유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주민 참여 기금 조성이나, 영화 촬영 장소 제공과 같은 수익형 사업도 고민해 볼 수 있다.

국비 지원이 사라진 상황에서 영도문화도시가 어떻게 성과를 이어갈지 부산 시민들은 주시한다. 아직 여지는 있다. 일몰 결정이 나도 12월까지 예산을 수립하면 지속 가능하다.

그동안 영도구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함께 만들어온 문화도시 사업의 성과가 이어지도록 영도구청의 정책 변화와 함께 예산 배정을 촉구한다. 문화는 도시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주는 주요한 요소다. 또 도시와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활기차게 미래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중요한 매개체이자 가치다.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고 활기차게 하는 힘은 바로 문화에서 나온다. 영도구청의 사려 깊은 결정을 기다린다.


정달식 부산일보 논설위원. 부산일보DB 정달식 부산일보 논설위원. 부산일보DB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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