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구글과 애플 등 거대 다국적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논의되던 필라1과 필라2 논의가 유야무야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은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체를 구성해 필라 1·2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다국적기업이 A라는 국가에서 영업활동을 하면서 얻은 이익에 대해 공정하게 과세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현지시간) 다국적 기업들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이익을 해외로 보내는 관행을 막기 위한 논의가 어려움에 부닥쳤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 논의는 구글·애플 등 다국적기업이 조세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법인세가 낮은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세금을 회피하는 행위 등을 방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필라2’로 불리는 논의는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 기업이익과 관련해 최소 15%의 실효세율을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다국적 기업의 본사 소재 국가가 15% 미만의 세금을 부과한 경우, 미달한 세율만큼 다른 국가가 과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외국 정부가 미국 다국적 기업들을 대상으로 이 규정을 적용하려 할 경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고율 관세 등을 통해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코펜하겐비즈니스스쿨의 라스무스 콜린 크리스텐센 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선호하는 정책을 고려할 때 보복 관세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유세 과정에서 중국산에 60% 관세를 부과할 뿐만 아니라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캐나다는 이미 개별적으로 미국을 포함한 거대 다국적 기업들에 디지털서비스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에 따라 미국의 보복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필라2 뿐만 아니라 다국적 기업의 소득에 대해 매출 발생국에서 과세할 수 있도록 하는 원칙을 담은 ‘필라1’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필라1 발효를 위해서는 다국적 기업 약 100곳 가운데 본사가 위치한 30개국의 의회가 비준해야 하며 미국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한 소식통은 그동안 비준을 두고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여온 필라1과 관련해 트럼프의 재선 확정일이 ‘사망 선고일’이라고 보기도 했다.
미국의 조약 비준 절차상 미 상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지만, 공화당 측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으며 트럼프 당선인도 해당 조약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왔다.
일각에서는 필라1이 폐기될 경우 각국이 세수 확보를 위해 개별 과세에 나설 수 있지만 이 경우 미국의 보복을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트럼프 당선자의 선거과정에서 애플이나 구글 등이 일론 머스크와 달리 뚜렷한 지지입장을 나타내지 않아 트럼프 행정부가 막무가내로 이들 논의를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