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대한민국 정책금융의 본산을 부산국제금융센터(BIFC)로 이전시켜 낙후된 동남권의 산업 지형과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게 이번 정부의 의지다.
이미 2009년 부산이 금융 중심지로 지정된 이후부터 부산국제금융센터에는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예탁결제원 등 37개 기관이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이전한 상태다. 부산시와 부산 상공계는 산업은행까지 가세해 동남권에 맞춤형 정책금융을 일으키면 산업 개편이라는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지난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산업은행법 개정안은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폐기처리됐다.
산업은행법 개정안의 핵심은 그야말로 간단하다. 현행 산업은행법 4조 1항 ‘한국산업은행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의 문구 중 본점 소재지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바꾸는 것이 전부다. 여야 간의 합의만 되면 언제든 이전은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미 산업은행은 동남권투자금융센터를 신설하는 등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직원을 일부 부산으로 이전시키는 중이다. 법안에 본사 규정 문구 하나만 바뀌면 이전 사업은 마무리된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지도부 지난 19일 한국노총과의 간담회에서도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여당 당론임을 못 박았다. 산업은행 이전을 반대하는 노조 관계자들에게 한 대표는 “우리 국민의힘은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것을 당론과 공약으로 하고 있다”면서 “산업은행의 노동자 분들께서 반대하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하신 내용 중 놓친 부분이 있는지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2대 국회에서도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민주당의 반대로 요원하다. 국민의힘 박수영(부산 남) 의원이 22대 국회 개원 이후 산업은행 이전을 1호 법안으로 대표 발의해 연내 통과를 목표로 뒀지만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부산시와 국민의힘 부산시당 입장에서도 가장 우선적으로 챙기고 있는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마저 연내 통과가 불투명한 터라 산업은행법 개정은 언감생심이다.
법안을 발의한 박 의원 역시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과 산업은행 개정안 중 전자의 연내 통과가 더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국민의힘 부산시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 의원도 야당과의 협치가 전혀 안 되는 상황에 전선을 두 곳으로 확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박 의원이 본 산업은행 이전의 재추진 시점은 줄줄이 이어진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선고 이후다. 그는 “대북 송금 재판 등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첩첩산중”이라면서 “산업은행 이전을 반대해 온 이 대표와 지도부의 당내 지배력 약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불발될 경우 박 의원이 제시하는 플랜 B는 2차 공공기관 이전이다. 내년 부산시의 역량을 오롯이 산업은행법 개정에 매진해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과 발맞춰 산업은행 이전도 진행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2차 공공기관 이전 역시 윤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인데 전혀 진척이 되지 않고 있는 만큼 이를 산업은행과 관련한 어젠다로 키워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해 산업은행은 국토교통부의 이전 공공기관 지정 고시까지 완료해 둔 상태여서 2차 공공기관 이전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에 산업은행 선점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박 의원은 올해 정기 국회가 막을 내리기 전까지는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통과에 주력하는 한편 TK(대구경북)의 움직임도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이달 대구 정치권은 ‘중소기업은행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에는 주호영 국회부의장,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김상훈 정책위의장 등 여당 지도부를 포함해 대구 국회의원 11명이 동참했다. IBK기업은행의 본점을 대구로 이전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 개정안은 사실상 산업은행법 개정안의 판박이다. 대구의 중소기업은행법 개정안도 통과가 늦어지면 지역별 형평성 차원에서 부산과 법안 진도 맞추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