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형 녹색채권(Security Token Offering)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되는 수준을 넘어섰다. 홍콩은 검증을 거쳐 상용화했고, 일본과 유럽에서도 초기 발행이 이뤄졌다. 토큰형 녹색채권은 신뢰성과 시장 활성화에 상당한 효과가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선 기술적 문제가 아닌 법안 부재로 도입이 불가능한 상태다.
■토큰형 녹색채권의 가능성
지난 10월 한국은행은 ‘토큰증권을 통한 녹색채권 발행 사례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연구원 등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최대 2500~2600조 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한다. 그럼에도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녹색금융 시장의 성장세는 더뎌, 녹색채권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녹색채권이 발행과 사후관리 절차가 복잡한 것이 활성화를 저해한다고 평가했다. 환경 정보가 완벽히 투명하게 공개되지 못하는 점도 걸림돌로 보았다.
토큰형 녹색채권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다양한 기술적 이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고서의 설명이다. 토큰형 녹색채권은 불록체인 등 분산원장기술을 기반으로 발행되는 디지털 형태의 채권이다.
기술 특성상 토큰형 증권은 거래기록이 영구 저장되고 조작도 불가능하다. 투명한 거래로 채권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자금 흐름이 기록되고 공개되며, 사물인터넷(IoT) 등과 연계하면 채권의 프로젝트의 각종 환경지표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이나 용수 사용량 등이 수집돼 블록체인 안에 자동으로 기록되는 것이다. 채권 구매자가 어디서든 자금 흐름과 프로젝트 효과를 확인할 수 있기에, ‘그린워싱 우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스마트 거래 기술로 발행과 사후보고 절차를 자동화해,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거래 편의성 증가로 개인과 국외 투자자 등 투자자 저변을 확대하고, 접근성이 낮았던 중소기업의 친환경 자금 조달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앞서가는 홍콩, 느린 한국
토큰형 녹색채권에 가장 적극적인 곳이 홍콩이다. 홍콩 정부는 홍콩통화청(HKMA)과 협업해 2001년과 2002년 두 차례 개념검증을 위한 테스트 버젼의 채권을 발행했다. 이어 2023년에는 8억 홍콩 달러(1500억 원 상당), 올해 2월에는 60억 달러(1조 1400억 원 상당)의 토근형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정부가 녹색채권을 토근증권 형태로 발행한 첫 사례이다. 아직은 시범사업 성격이 남아있어, IoT 기술 연계 등의 추적 기능은 제외했다. 대신 일반 국채와 같은 신용등급을 부과하고 동일한 외부 검증을 거쳐 녹색인증을 받았다.
보고서는 “토큰증권 발행과 관련한 법적·제도적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며 “새로운 증권임에도 국내외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으며 발행물량을 무난히 소화해 시장성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경우 일본거래소 그룹(JPX)와 히타치사도 블록체인 플랫폼을 이용해 2022년 5억 엔(45억 원 상당), 2023년에 100억 엔(900억 원 상당)의 토근형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유럽투자은행(EIB)도 2023년 10억 크로나 규모(1300억 원 상당)의 토큰형 녹색채권을 내놓았다. 일본과 유럽의 토근형 녹색채권 발행은 아직 검증 단계로, 상용화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국내에선 법적으로 현재 토큰형 녹색채권이 불가능하다. 현행법은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증권을 유효한 증권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저작권, 미술품, 부동산 등 유동성이 낮은 일부 상품만 예외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토큰증권 거래를 인정하는 전자거래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지난해 상장은 됐지만 회기 내 통과하지 못했다.
한국은행 지속가능성장기획팀 배정민 과장은 “우리나라도 녹색채권 시장 활성 방안으로서 토큰증권 활용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공공부문이나 금융기관의 적극적 협업을 통해 시범 발행을 고려해야 한다”며 “관련 법안 논의를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동시에 기술 실험도 충분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결제원과 CBDC 활용성 테스트의 일환으로 ESG 채권과 지속가능연계 채권에 대한 개념검증을 진행하고 있다”며 “향후 토큰형 녹색채권 발행에 중요한 참고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