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텀 아이맥스로 본 ‘시빌 워’…영상미·사운드 ‘압권’ [경건한 주말]

입력 : 2025-01-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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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사는 시네필에겐 최근 기쁜 소식이 있었습니다. 지난달 13일 CGV센텀시티에 아이맥스(IMAX)관이 새롭게 오픈했습니다. 그동안 부산의 IMAX관은 CGV서면점이 유일했는데, 두 번째 IMAX관이 생긴 겁니다.

기존의 스타리움관을 리뉴얼해 오픈한 이 상영관은 일명 ‘용아맥’(용산 IMAX관)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스크린의 IMAX관입니다.

마침 IMAX로 보기 좋은 영화가 지난달 31일 개봉했습니다. 완성도 뛰어난 작품들로 유명한 미국 독립 영화 배급사 A24의 첫 번째 블록버스터인 ‘시빌 워: 분열의 시대’(이하 ‘시빌 워’)입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BIFF) 당시 야외상영관에서 이 작품을 관람했던 기자가 IMAX로 재관람한 후기를 남겨 봅니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마인드마크 제공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마인드마크 제공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를 모의한 내란범들은 언론인 사살까지 계획했습니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는 사살 대상으로 ‘좌파 언론인’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극단적 분열로 내전이 발발한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시빌 워’ 속 기자들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정부군이 있는 워싱턴에선 기자들을 현장에서 사살하는 참극도 벌어집니다. 그러나 ‘참기자’라면 생명의 위협도 무릅쓰고 취재해야 하는 법입니다. 로이터통신 소속의 전설적인 사진 기자 ‘리’(커스틴 던스트)는 동료인 ‘조엘’(와그너 모라)과 함께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하기 위해 워싱턴 DC로 향합니다. 이들의 여정에는 뉴욕타임스의 베테랑 기자 ‘새미’(스티븐 헨더슨), 리를 동경하는 어린 사진 기자 지망생 제시(케일리 스패니)가 동행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들 취재진이 워싱턴을 향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대로 보여 주는 형식을 취합니다.

내전 중인 미국은 더 이상 패권국가가 아닙니다. 통화 가치가 폭락해 시민들은 캐나다 달러를 선호하고, 인터넷 연결과 전기 공급도 불안합니다. 도로엔 파괴되고 버려진 차들이 가득해 디스토피아를 연상케 하고, 곳곳에서 시민들이 소총으로 무장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마인드마크 제공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마인드마크 제공

이런 장치들로 인해 관객은 러닝타임 내내 잔잔한 긴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총탄이 빗발치는 교전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종군 기자들의 취재는 그야말로 위험천만합니다. 비무장상태인 기자들끼리 조용히 이동하다가도 한순간 저격을 당하는 판이니 언제 어디서든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

영화는 내전의 이유를 알려 주지는 않지만, 3선의 독선적 대통령의 무능이 주요 원인이라는 점을 암시합니다. 그렇다고 대통령과 정부군에 대항하는 서부군을 정의로 묘사하진 않습니다. 살육에 미친 군인과 기자들이 대치하는 신에선 서스펜스가 폭발합니다. 이 장면에선 이민자 등 외부인을 혐오하는 오늘날의 극단적 배타주의에 대한 경고 메시지도 담았습니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마인드마크 제공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마인드마크 제공

가장 비중 있게 다루는 주제는 저널리즘의 딜레마입니다. ‘동료가 죽어 나가도 카메라를 들이밀어야 한다’는 사진 기자의 숙명이 극적인 상황들을 연출합니다. 여객기 추락사고를 계기로 보도 윤리가 화두가 된 요즘의 국내 상황에도 어울립니다.

저널리즘의 딜레마 문제는 두 여성 주인공인 리와 제시의 관계를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폭력의 현장에서 손이 덜덜 떨려 사진도 찍지 못하던 애송이 제시는 베테랑 기자 리를 따라다니며 뛰어난 사진 기자로 성장합니다. 인명이 달린 급박한 상황에도 카메라를 붙잡고 셔터를 눌러 대는 철저한 관찰자이자 기록자로 거듭납니다.

역사적 현장을 내 손으로 기록한다는 도취감에 사로잡혀 인간성과 현실감을 상실해가는 제시, 그리고 제시와는 반대로 점차 신념이 흔들리는 리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기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무엇인지, 특종을 좇는답시고 이따금 ‘선’을 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조금은 이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마인드마크 제공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마인드마크 제공

영화는 영상미와 사운드가 훌륭해 IMAX관에서 감상하기에 딱 좋습니다. 클라이맥스인 마지막 백악관 전투 시퀀스는 반드시 영화관 스크린으로 봐야 합니다. 실제 시가전 장면을 방불케 하는 사실적인 연출이 과연 압권입니다.

또 미국 곳곳의 자연 풍경을 담아낸 아름다운 화면들도 IMAX 화면으로 보기에 제격입니다. 센텀 IMAX관의 경우 화면이 거대해 일반 2D관에서 인기 있는 자리인 H, I열 등에서 보면 자막과 영상을 한눈에 보기가 조금 힘들 정도였습니다. 조금 더 뒤쪽인 K열 전후에서 관람할 것을 추천합니다.

‘시빌 워’는 전투기 굉음,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 폭발음, 총격 등 사운드 구현에도 공을 많이 들였는데, IMAX관의 음향 시설로 감상하니 현장감이 대단합니다. 고막을 강타하는 강렬한 사운드는 집에서는 절대 흉내 내지 못할 수준입니다. 센텀 IMAX관은 ‘IMAX 이머시브 사운드’(Immersive Sound)를 도입했다고 하는데, 출력과 입체감에서 확실히 일반 상영관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음악 활용은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습니다. 삽입곡들은 전형적으로 ‘미국스럽다’는 느낌이 들어 ‘미국에서의 내전’이라는 배경 설정에 몰입하게 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관객이 극 중 사건에서 거리를 두게 하는 ‘소격 효과’를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마인드마크 제공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마인드마크 제공

기자는 지난해 BIFF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시빌 워’ 관람이었습니다. 결말을 알고 관람했는데도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영상미와 사운드는 물론이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적당한 속도감, 잔잔한 긴장감과 완급 조절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실관람객들 사이에선 혹평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은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가 대부분입니다. 본격 재난·전쟁영화를 표방하는 예고편 탓에 시종일관 액션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종군기자 중심의 드라마 장르에 가까워 예상과 달리 지루했다는 후기입니다. 또 저널리즘의 양면성을 보여 주는 결말부의 주인공 행동이 이해하기 어렵고 허무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기자는 이런 혹평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혹평을 남긴 관객 중엔 ‘그래서 도대체 내전이 왜 일어났느냐’고 물으며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는데, 사실 디스토피아 장르는 이유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전의 원인에 집착할 필요가 전혀 없고, 이유를 몰라도 영화를 감상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시빌 워’는 생각을 자극하는 지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서사가 그리 치밀하진 않아 ‘명작’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평소 상업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즐기는 시네필이라면 필시 좋아할 만한 수작입니다.

애매한 방향성은 아쉬운 점으로 남습니다. 일부 관객의 지적처럼 ‘시빌 워’는 오락성만을 좇는 재난영화나 전쟁영화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더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오늘날 사회 문제로 떠오르는 첨예한 분열과 대립 양상을 풍자하거나 정치적 메시지를 녹여 낸 블랙코미디 장르로 방향을 잡았다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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