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내수 부진에 수출도 반토막…남해안 굴 눈물의 시즌 마감

입력 : 2025-04-23 14:59:25 수정 : 2025-04-23 17: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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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역대급 고수온 탓 출하량 급감
불경기·이상 기후 여파로 소비 위축
공급량 부족에도 단가는 찔끔 상승
일본 등 가공·수출 시장도 개점휴업
시즌 조기 마감에 지역경제 빨간불

통영시 용남면 한 생굴 작업장. 흥겨운 트로트 메들리로 시끌벅적해야 할 작업장이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김민진 기자 통영시 용남면 한 생굴 작업장. 흥겨운 트로트 메들리로 시끌벅적해야 할 작업장이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김민진 기자

“올해는 이쯤에서 끝내야 할 듯합니다.”

23일 오전 경남 통영시 용남면 한 굴 박신장(굴 껍데기를 제거해 알맹이 굴을 생산하는 시설). 흥겨운 트로트 메들리로 시끌벅적해야 할 작업장이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굴 더미로 그득했던 작업대는 말끔히 치워졌다. 바닷물로 흥건해야 할 바닥도 바짝 말랐다.

업주는 “(조업할) 원료도 없고 단가도 신통찮아 지난주부터 작업을 중단했다. 당분간 지켜볼까 했는데, 아무래도 접어야 할 것 같다”고 푸념했다.

시즌 막바지에 접어든 경남 남해안 굴 양식업계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작년 여름 남해안을 덮친 고수온 후유증에 공급이 달리는 와중에도 값이 오르긴커녕 되레 바닥을 치며 애를 태우더니 때 이른 무더위에 그나마 있던 소비마저 사라질 위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맘때 원료 소비를 주도하던 가공·수출 시장마저 반토막 나면서 조업할수록 손해인 악순환만 반복되는 모양새다.

굴 양식업계는 통상 찬 바람 불기 시작하는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6월까지 출하 시즌을 이어간다.

그런데 올해는 주산지인 통영과 고성, 거제지역 굴 박신장 300여 곳 중 절반가량이 이미 시설 가동을 종료했거나 이달 중 중단할 예정이다. 시즌 초반부터 잇따른 안팎 악재가 종반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굴수하식수협은 지난해 10월 14일 경남 통영 본소 위판장에서 ‘2024년 생굴 초매식’을 열었다. 초매식은 수협 공판장에서 진행되는 첫 경매 행사다. 업계는 이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생산 시즌에 돌입, 이듬해 6월까지 출하 시즌을 이어간다. 김민진 기자 굴수하식수협은 지난해 10월 14일 경남 통영 본소 위판장에서 ‘2024년 생굴 초매식’을 열었다. 초매식은 수협 공판장에서 진행되는 첫 경매 행사다. 업계는 이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생산 시즌에 돌입, 이듬해 6월까지 출하 시즌을 이어간다. 김민진 기자

지난 여름 역대급 고수온에 굴 양식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굴은 딱딱한 껍데기가 알맹이를 보호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수온 변화에 둔감하다. 오히려 긴 장마로 육지에 있던 각종 영양분이 바다로 다량 유입돼 성장은 더 잘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딴판이었다. 바닷물 온도가 30도를 웃도는 이상 고온 현상이 두 달 가까이 지속되면서 어린 굴은 제때 성장을 못했고, 뒤늦게 ‘산소부족물덩어리(빈산소수괴)’ 등 이상 조류까지 겹치면서 출하를 앞둔 성체도 상당량이 떼죽음했다.

경남 전체 굴 양식장 3분의 1에 해당하는 1130ha에서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평균 폐사율은 60%, 심한 곳은 90%를 웃돌았다.

이 때문에 시즌 내내 물량 부족에 허덕였다. 공급이 줄면 으레 가격은 오르기 마련인데, 현실은 반대였다. 생굴 유통 가격은 10% 이상 떨어졌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고유가 등 4중고로 인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소비재 시장이 얼어붙은 탓이다.

굴수협은 최저 단가라도 맞추려 주 5일 하던 생굴 경매를 주 3일로 단축했지만 역부족. 최대 성수기로 꼽는 김장철에도 부진은 계속됐다.

설상가상 최근 때이른 무더위까지 기승이다. 주로 날것으로 먹는 생굴은 기온이 오르면 생산·유통 과정에서 위생 문제가 불거질 개연성이 높아 전문 식당에서도 취급을 꺼린다.

이렇다 보니 생산량은 작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굴수협 자료를 보면 4월 중순 이후 일일 평균 생굴 위판량은 30t 남짓이다. 작년 이맘때는 60t을 훌쩍 넘었다. 그 사이 단가는 4만 원 초반에서 5만 원 중반으로 20% 남짓 찔끔 인상에 그치고 있다.

수협 관계자는 “소비가 안되다 보니 물량이 줄어도 단가는 크게 오르지 않는 분위기다. 지금 가격대에선 차라리 수확을 하지 않는 게 낫다 보니 소규모 박신장은 대부분 일을 접고 있다”면서 “소포장 단위로 가공, 유통해 온 중소 가공업체도 상당수가 문을 닫은 상태”라고 전했다.

통영시 용남면 한 생굴 작업장. 흥겨운 트로트 메들리로 시끌벅적해야 할 작업장이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김민진 기자 통영시 용남면 한 생굴 작업장. 흥겨운 트로트 메들리로 시끌벅적해야 할 작업장이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김민진 기자

수출 시장 역시 제 몫을 못 하고 있다.

이맘때 자연 감소하는 내수 소비를 뒷받침해 원료 끌어주는 견인차가 일본을 중심으로 한 수출인데, 이 시장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도 경기 부침이 심해 작년 수출한 재고가 상당량 남아 있다”면서 “전체로 보면 (올해 수출량이) 예년의 3분의 1 정도로 줄었다”이라고 귀띔했다.

시즌 단축이 현실화하면서 지역 경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경남 지역 굴 산업 직·간접 종사자는 줄잡아 2만여 명. 대부분 일한 만큼 품삯을 받는다.

이 관계자는 “종사자들이 받는 돈이 돌고 돌아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경기 위축을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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