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부산시 책임 회피 더는 안 된다

입력 : 2025-04-27 19: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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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사회부 기자

지난달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싱크홀 영상을 봤다. 도로 한가운데 생기고 있는 싱크홀 위를 마침 승합차와 오토바이가 지나고 있었다. 승합차는 크게 덜컹거리며 다행히 싱크홀을 벗어났다. 반면 뒤따라가던 오토바이는 싱크홀에 집어삼켜졌고, 운전자는 다음 날 숨진 채 발견됐다. 몇 초 사이에 생과 사가 갈린 셈이다.

기막힌 일이라고 생각한 싱크홀이 지난 13일 부산도시철도 사상~하단선에서 발생했다. 이른 아침 교차로 횡단보도 한복판 땅이 와르르 무너지며 앙상한 땅속 모습이 드러났다. 시민들은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것이 천운”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불과 200여m 떨어진 곳에 새로운 싱크홀이 생기며 사람들은 더 두려움에 빠졌다. 평소 다니는 도로가 지뢰밭처럼 느껴진다는 반응이 나왔다.

땅이 꺼진 이유를 밝히기 위해 취재를 시작할 때부터 사실 원인은 뚜렷해 보였다. 2023년부터 이날까지 발생한 14차례 싱크홀은 모두 사상~하단선 공구를 따라 형성돼 있었다. 누구나 도시철도 공사와 싱크홀 연관성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시철도 공사 주무 기관인 부산교통공사는 ‘도시철도 공사가 싱크홀을 불렀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며 이를 부정했다. 오히려 지난 23일 부산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 측구(도로 양 옆 배수로)가 싱크홀 원인이라고 언급하며 관리 주체인 사상구청에 책임을 미루는 듯이 발언하기도 했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사상~하단선 착공 전인 2016년부터 부산교통공사와 사상구청 모두 측구 부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변명은 궁색해졌다. 이곳에서 발생한 6번의 싱크홀이 측구가 원인으로 지목된 만큼, 두 기관 모두 지금의 사태를 미리 방지할 기회가 있었던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오락가락하는 부산시의 태도는 시민들 분노를 더욱 키웠다. 부산시는 지난해 11월 실시한 사상~하단선 2공구 감사 결과를 지난 22일 발표하며 싱크홀이 12번 발생한 1공구에 대해서는 감사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박형준 시장이 감사를 지시하면서 이틀 만에 입장을 바꿔 특별 감사를 실시한다고 말을 바꿨다.

‘남 탓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부산의 현실’ ‘무능하고 책임지기 싫어하는 무사안일주의’ 같은 보도가 나가자 시민들의 불만과 응어리가 쏟아졌다. 싱크홀 공포를 잠재워야 할 행정 기관들의 책임을 미루는 모습에 대한 질타였다.

싱크홀 사태는 이제 시작이다. 다음 주부터 싱크홀 원인을 조사할 지하사고조사위원회, 시 감사위원회 활동이 시작된다. 시가 내놓은 각종 대책도 본격적으로 현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안전에 ‘적당히’는 없다. 서울과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시 대책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 철저하게 지켜볼 때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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