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행이 지역화폐 동백전을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하는 연구에 착수하면서, 전국 최초의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 사례가 될지 주목된다. 동백전의 스테이블코인화로 실시간 정산과 정책 자금 투명화, 의료관광 활성화 등 다양한 효과가 기대되지만, 법적 근거와 제도 미비는 여전히 현실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된다.
26일 BNK금융그룹에 따르면 부산은행은 지역화폐 동백전을 스테이블코인 형태의 디지털화폐로 전환하는 ‘신동백전’ 사업을 연구 중이다. 동백전을 스테이블코인화한다는 것은 기존의 선불카드나 포인트 방식의 지역화폐를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화폐, 즉 원화와 1 대 1 가치가 연동된 암호화폐를 만든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험 ‘프로젝트 한강’에도 참가했던 부산은행은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실시간 정산과 정책자금의 디지털화 등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부산은행은 아울러 스테이블코인 시대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지난 4월 오픈블록체인·DID가 신설한 스테이블코인 분과 가입을 추진 중이다. 이곳에서는 우리·기업·국민·수협·케이뱅크 등의 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한다.
부산은행 관계자는 “CBDC와 스테이블코인은 구조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아 기술적으로는 구현 가능하다”며 “연구가 초기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정부의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에 따라 추진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동백전은 2019년 12월 출시 이후 이달 25일 기준 가입자 수가 160만 명에 이른다. 올해 상반기 가맹점 수는 14만 5000여 곳에 달하며, 2023년에 누적 발행액 5조 원을 돌파해 부산 시민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지역 대표 결제수단으로 정착한 동백전이 디지털자산 기반 지역화폐로 전환되면 파급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기대되는 변화는 결제와 정산의 실시간 처리다. 현재 일부 가맹점에서 적용 중인 QR 기반 결제 시스템이 확장될 경우 소상공인 가맹점은 기존 카드 결제보다 빠른 자금 회수가 가능해진다. 실제로 현재 카드 기반 동백전은 정산까지 하루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구조다. 반면 QR 기반 디지털화폐로 전환되면 거래 즉시 정산이 가능하다는 것이 부산은행 측의 설명이다.
정책 집행의 효율성도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출산지원금과 아동수당, 바우처 등 각종 정책성 자금을 동백전 스테이블코인으로 지급하면 시민들이 실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어 행정 처리 비용이 줄고 예산 누수도 방지할 수 있다.
부산이 강점을 지닌 의료관광 분야도 수혜가 예상된다. 외국인 환자가 병·의원·약국에서 동백전 스테이블코인으로 즉시 결제하면 환전 수수료와 결제 지연이 사라지고, 의료기관 역시 실시간 정산으로 자금 회전이 빨라져 서비스 제공 여력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적 과제는 여전히 높은 벽이다. CBDC는 한국은행이 법에 따라 추진할 수 있지만, 지역화폐의 스테이블코인화는 법적 근거가 없다.
부산시 관계자는 “동백전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하자는 논의는 초기부터 있었지만, 현재 시스템 전체에 적용되진 못했다”며 “외환 규제, 발행 주체, 증권형 토큰(STO) 규제 등 복합적인 제도적 장애물이 있어 현실화까지 많은 장애물이 있다”고 말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