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에서 인적 쇄신을 둘러싼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윤희숙 혁신위원장은 17일 비상대책위원회 비공개 회의 후 ‘다구리’(몰매를 뜻하는 은어)라는 표현으로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전날 송언석 비대위원장과 나경원·윤상현·장동혁 의원을 인적 쇄신 1호 대상으로 지목하면서 지도부와의 충돌이 노골화된 모습이다.
윤 위원장은 이날 오전 회의 직후 “비공개 때 있었던 얘기니까 그냥 ‘다구리’라는 말로 요약하겠다”고 말했다. 전날 송언석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 등에게 거취 표명을 요구한 것과 관련해 비대위원들로부터 강한 질타를 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당내 쇄신 노력이 없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오늘 비대위 안에서 느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지난해 12월 이후 우리 당 모습에 대해서 국민이 가장 답답해하는 모습이 ‘어째서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느냐’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쇄신안 반발과 관련해 그는 “반발이 없으면 혁신안이라고 말할 수 없다”며 “우리가 해오던 방식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 이 당이 정말 완전히 새로워졌다는 느낌을 주기 어렵다. 그건 다들 예상하고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계속 당을 바꿔 나가기 위한 혁신을 해나가는 것이 제 몫”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당 지도부는 ‘다구리를 당했다’는 표현을 부인했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회의 직후 “혁신위에 확인해보니 어느 누구도 혁신안을 공유 받은 사람이 없었다. (윤 위원장) 개인 자격으로 (혁신안을) 발표했고, 그 부분을 지적했는데 그걸 다구리라고 표현하면 도가 너무 지나치다”고 말했다. 그는 “인사청문회 시즌이고 화력을 집중해야 할 시기인데 굳이 왜 이 타이밍에 발표했느냐는 불만이 많았다”며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다면 부담이 덜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적 쇄신 대상으로 지목된 인사들의 반발도 거세다. 나경원 의원은 이날 SNS에 “대선 이후 당 내부를 향한 무차별 내부총질이 하루도 끊이지 않는다”며 “우리 당 지지층의 약 80%, 그리고 40%에 가까운 국민들이 탄핵은 답이 아니라고 했다. 의사결정의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탄핵에 동의할 수 없었기에 그들과 함께 민주당에 맞서 싸웠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힘이 바탕이 돼 40% 넘는 대선 득표율을 얻을 수 있었고 보수 궤멸의 최악 상황은 막았다. 그런데 정작 최악의 상황은 대선이 끝나고 벌어지고 있다”며 윤 위원장을 겨냥했다.
장동혁 의원도 SNS에서 “오발탄”이라고 반발했다. 그는 “윤희숙 혁신위원장은 무작정 여기저기 다 절연하자고 한다”며 “국민의힘마저 절연하면 그분들(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은 누가 지켜줄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선거 때는 도와달라 사정하고, 선거 끝나면 내쫓고, 소금 뿌리고, 문 걸어 잠그고, 얼씬도 못 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혁신’으로 포장한다”고 말했다. 윤상현 의원은 “저를 치십시오. 저는 당을 위해 언제든 쓰러질 각오가 돼 있다”며 “이 당을 살리고, 무너진 보수를 다시 세우기 위해 언제든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윤 위원장이 추가 인적 쇄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당내 갈등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혁신안 추진 과정에서 지도부와의 충돌이 이어지고 중진 의원들의 반발까지 겹치며 내홍은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