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일하러 간 줄도 몰랐는데…” 주검으로 돌아온 남편 [ 울산 동서발전 붕괴 사고 ]

입력 : 2025-11-09 13:42:24 수정 : 2025-11-09 16: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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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서발전 붕괴사고 피해자
영정사진 걸린 빈소는 적막감만
잠시 생활비 벌러 나갔다 참변
“잘 지내고 또 보자고 했는데…”
가족들 눈물바다에 몸도 못 가눠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로 숨진 전 모 씨의 빈소 앞에 근조화환이 줄줄이 비치돼 있다. 강대한 기자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로 숨진 전 모 씨의 빈소 앞에 근조화환이 줄줄이 비치돼 있다. 강대한 기자

“추석에 마지막으로 봤을 때, 잘 먹고 잘 지내고 또 보자고 얘기했었는데 이런 일이…”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로 나흘째인 8일 오후 1시께 울산시 남구의 한 장례식장. 출입구에서 눈물을 훔치는 조문객들을 지나쳐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니, 전자 안내판엔 전 씨의 영정사진이 송출되고 있었다.

깔끔한 정장을 입고 옅은 미소를 보이는 흑백사진이다. 전 씨는 당일 장례식장에 안치된 망자 중 가장 ‘젊은이’였다.

복도에서 만난 전 씨의 처형은 “생전에 우리 동생에게 너무 잘해준 매제였다”면서 “사는 게 힘들어도 서로 알콩달콩 잘 지내 왔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 있던 남편은 “추석에 본 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며 아내를 다독였다.

전 씨의 빈소는 복도 맨 끝에 있었다. HJ중공업 대표이사, 한국동서발전 사장·노동조합, 코리아카코 대표이사 등의 이름이 적힌 근조화환 10여 개가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반대쪽엔 김두겸 울산시장의 조기 등도 보였다. 빈소 내부는 친인척 등 10여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분위기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전 씨의 아버지는 상복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모습으로, 몸을 제대로 못 가눠 주변인들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곡기는 삼키기 버거운지 전 씨의 아버지는 앞에 놓인 국만 몇 숟갈 뜨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고인의 아내가 많이 슬퍼하시며 눈물이 마를 새가 없다”고 귀띔했다.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눈물을 훔치고 있던 전 씨의 아내는 “너무, 너무너무 힘들어요”라며 손사래 치며 취재진을 거부했다.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로 숨진 전 모 씨의 빈소 앞에 근조화환이 줄줄이 비치돼 있다. 강대한 기자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로 숨진 전 모 씨의 빈소 앞에 근조화환이 줄줄이 비치돼 있다. 강대한 기자

눈시울이 시뻘게진 채 손가락으로 전 씨 동생을 가리켰다. 전 씨 동생은 자신의 형을 가정적이고 성실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전 씨의 동생은 “형님은 인력사무소 소개로 사고 현장에 나가신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사고를 당했다”면서 “다른 일을 구직 중 잠깐 시간이 비어서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일용직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 씨는 과거 수도권에서 정육점과 고깃집 등을 운영하다가 코로나19 여파로 가게를 닫고 영남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다. 최근 울산에서 반도체 관련 직장에 취직했으나 첫 출근일이 늦춰지면서 남는 시간에 일용직을 전전한 것이다.

아내에겐 “위험한 일이 아니다”며 안심시키고 다른 가족들에게는 일용직 출근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전 씨의 동생은 요즘 세상에 비용을 줄이면서 철거를 빠르게 하려고 발파가 이뤄진다는 게 맞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다시는 같은 사고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아직도 붕괴 현장에서 수습이 안 된 피해자분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저희도 저희이지만, 현장 상황을 어떻게 빨리 정리하느냐는 부분이 더 중요한 문제다”고 말했다.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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