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구치소 전경. 정대현 기자 jhyun@
지난해 부산구치소 재소자 폭행 사망 사건(부산일보 2025년 9월 24일 자 1면 등 보도)을 계기로 법무부가 도입한 ‘폭행 피해·가해 우려자 지정 제도(이하 우려자 지정 제도)’가 최근 발생한 구치소 내 폭행 사건에서는 사실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제도는 폭행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위험성이 높은 수용자를 사전에 분류해 분리 수용하고 집중 관리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폭행 신고가 접수된 뒤에야 이들이 우려자로 지정돼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0일 부산구치소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접수된 폭행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사건 발생 전 ‘폭행 피해·가해 우려자’로 지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구치소는 사건 당사자를 대상으로 사전에 우려자 지정 검토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폭행 피해자 A 씨는 폭행 신고가 접수되고서야 피해 우려자로 뒤늦게 전환됐고, 가해자는 신고 접수 16일 만인 지난 4일에서야 가해 우려자로 분류됐다.
A 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약 두 달 동안 같은 수용실을 쓰던 재소자 4명에게 상습적인 폭행과 성추행 등 집단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치소는 폭행 소리를 들은 다른 수용자의 신고가 접수된 뒤에야 해당 사실을 파악했다.
구치소 측은 이들을 피해·가해 우려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A 씨가 입소할 당시 정신과 의사 소견서에 경계선 지능인 관련 내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A 씨 본인이나 가족으로부터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정보를 들은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가해자들에 대해서도 과거 수용 이력과 현 수용 생활을 고려한 결과 폭행 사건·가해 사건이 신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려자 지정 검토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피해자 A 씨는 지난해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재판 받는 과정에서 경계선 지능인 판정을 받았다. 통상 경계선 지능인은 구치소 내 폭행 사건에 노출되기 쉬운 만큼 우려자 검토 대상으로 고려되어야 하지만, 구치소 측은 입소 당시 검사만을 근거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가해 우려자 지정 기준 역시 현실과 괴리가 드러났다. 구치소 내 폭행은 즉각적인 신고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교정 당국이 ‘현재 수용 생활 중 폭행 가해 전력이 없다’는 이유로 우려자 지정 검토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같은 판단이 결국 A 씨가 약 두 달 동안 폭행과 성추행 등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교정 당국의 ‘깜깜이 운영’도 문제를 더 키운다. 구치소는 악용 가능성을 이유로 폭행 우려자 지정 기준은 물론 이후 조치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효과가 있는지 외부에서 검증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려자 지정 제도가 유명무실하게 된 배경에는 법무부의 관리 부실도 한몫했다. 법무부는 이번 사건 당사자가 폭행 우려자로 지정됐는지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폭행 사고 우려자는 각 교정 기관에서 지정·관리하고 있어 법무부는 관련 정보를 별도로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제도는 법무부가 도입했지만 관리 책임은 각 구치소에 맡긴 채 사실상 손을 놓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법무부와 교정 당국이 국민 안전을 위해 수용자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부경대 경찰범죄심리학과 함혜현 교수는 “부산구치소는 전국 교정시설 가운데서도 시설이 가장 노후하고 열악해 감시 사각지대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라며 “가해 위험성이 높은 수용자는 심리검사 단계에서 세밀하게 분류해 지속 관리하고 순찰을 강화해 조기에 적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피해 가능성이 높은 수용자 역시 세부 유형별로 분류해 별도 집단으로 관리하는 보호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수빈 기자 bysue@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