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고개에 핀 ‘현대적 주술’…나숨갤러리, 전혜옥 판화전으로 개관

입력 : 2026-07-12 15: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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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까지 나숨갤러리…판화 부적 59점 전시
취업·장수 현실 소망부터 시대 징후까지 다뤄

전혜옥 목판화 '소원성취, 삼재부적'(2025). 전통 부적 판화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갓을 쓴 까치가 올라가 있는 모습이다. 김은영 기자 key66@ 전혜옥 목판화 '소원성취, 삼재부적'(2025). 전통 부적 판화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갓을 쓴 까치가 올라가 있는 모습이다.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 6일 부산 동구 망양로 880-1에 문을 연 문화예술공간 ‘나숨갤러리’ 외관. 1층은 전시 공간이고, 2층은 인문예술 창작 공간으로 꾸몄다. 때마침 문을 열고 나오던 전혜옥 작가가 사진에 찍혔다.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 6일 부산 동구 망양로 880-1에 문을 연 문화예술공간 ‘나숨갤러리’ 외관. 1층은 전시 공간이고, 2층은 인문예술 창작 공간으로 꾸몄다. 때마침 문을 열고 나오던 전혜옥 작가가 사진에 찍혔다.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 동구 망양로 성북고개 인근의 ‘아리랑고개 카페’가 새로운 예술 거점으로 바뀌었다. 도시재생을 통해 재탄생한 나숨갤러리의 첫 전시는 전혜옥 작가의 개인전이다. 홍성담 화백의 민중·인권 미술의 맥을 잇는 제자이자 동료로서, 오랜 시간 걸개그림과 대형 민중미술 프로젝트를 함께해 온 작가가 부산에서 선보이는 첫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나숨협동조합’은 지역 공동체와 호흡하며 마을 재생과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온 주체다. 1층은 전시 공간, 2층은 인문예술 창작 공간으로 꾸몄다. 개관전으로 선택된 전혜옥의 작업은 이 공간의 지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나숨갤러리 개관 기념 초대전① ‘전혜옥 판화 부적-초연결 K테라피’는 2020년 팬데믹 시기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 ‘코로나 퇴치부’를 제작하며 부적 연작을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과 ‘불가항력’의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은, 오래된 형식인 ‘부적’을 통해 새로운 시각적 언어로 호출된다. 전통 부적의 형식을 따르되, 이를 목판화로 번안해 낸 작업은 과거와 현재를 매개하는 일종의 시각적 장치로 읽힌다.

문화예술공간 ‘나숨갤러리’에서 개관 기념 첫 초대전을 열고 있는 전혜옥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문화예술공간 ‘나숨갤러리’에서 개관 기념 첫 초대전을 열고 있는 전혜옥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전시장에는 2020년부터 올해까지 제작된 59점의 부적 판화가 걸렸다. 한지 위에 붉은색으로 새겨진 이미지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건강 부적’, ‘장수 부적’, ‘백년해로부’, ‘삼신부’ 등 개인의 삶을 향한 소망에서부터 ‘취업 부적’, ‘합격·승진 부적’ 같은 현실적인 욕망까지, 작업은 점차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층위로 확장된다. 작가의 말처럼, 이는 나이가 들며 주변의 삶과 더 밀착된 감각에서 비롯된 변화이기도 하다.

동시에 전혜옥의 부적은 개인의 기원을 넘어 시대의 징후를 포착한다. ‘아시아평화 부적’, ‘쿠데타 방지부’, ‘탄핵기념 부적’ 등은 동시대의 정치적 긴장과 사회적 불안을 반영한다. 특히 2021년 제작된 ‘쿠데타 방지부’가 이후 한국 사회의 예상치 못한 사건과 겹쳐 읽히는 대목은, 부적이라는 형식이 지닌 예언적 아이러니를 떠올리게 한다.

전혜옥 목판화 '삼신부'(2026). 김은영 기자 key66@ 전혜옥 목판화 '삼신부'(2026). 김은영 기자 key66@
전혜옥 목판화 '사랑부'(2026). 나숨갤러리 제공 전혜옥 목판화 '사랑부'(2026). 나숨갤러리 제공
전혜옥 목판화 '마음치유 부적'(2026). 나숨갤러리 제공 전혜옥 목판화 '마음치유 부적'(2026). 나숨갤러리 제공
전혜옥 목판화 '더위방지부'(2025). 나숨갤러리 제공 전혜옥 목판화 '더위방지부'(2025). 나숨갤러리 제공

신용철 큐레이터는 부적을 “인간이 오랜 시간 불안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온 예술적 장치”로 설명한다. 이 맥락에서 전혜옥의 판화 부적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오늘의 언어로 다시 작동하는 ‘현대적 주술’에 가깝다. 나숨갤러리의 개관과 맞물려, 이 작업은 지역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하나의 상징적 제의처럼 자리한다.

지난 6일 개관식이 있던 날 흥미로운 장면은 관람객과 주민들이 저마다의 소원을 품고 부적을 한두 점씩 구입해 간 것이다. 전시장을 나서던 한 주민은 봉투 속 작품을 두고 “자식 취업부와 어머니 장수부”라고 말했다. 작품은 벽을 떠나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간다. 전혜옥이 말한 것처럼, 부적의 효험은 이미지 그 자체보다 그것을 품는 간절한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시는 7월 24일까지 이어지며, 이후 ‘이동근 산복도로 사진-모던시티-좌천아파트’(8월 3~21일), ‘송주웅 안창마을 회화-창창 울창 안창’(9월 1~18일)을 순차적으로 선보인다. 공간 운영 시간은 오전 11시~오후 7시(토·일요일과 공휴일 휴관)이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