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 성장의 그늘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으로 꼽을 문제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수도권 일극화일 겁니다. 모든 기능과 자원이 수도권에 집중돼 폭발 직전으로 차오르는 반면, 지방은 점점 말라 죽어가는 나라에서 내일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시작된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은 이런 위기 의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직은 ‘마중물’에 머무는 측면도 있지만, 공공기관 지방 이전으로 조성된 지방 혁신도시는 수도권으로 취업길을 떠나야 할 청년들에게 그나마 양질의 지역 일자리를 제공합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산업은행 부산 이전도 그 연장선에 있는 조치입니다. 문현동 금융중심지에 산업은행이 내려 와야 한다는 데 대해 울산·경남은 물론 대구·경북까지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노무현 정신’을 잇는다는 민주당에서 수도권 의원을 중심으로 서울 존치 주장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어제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도 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산업은행의 육성 혜택을 받아야 할 벤처기업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니 산업은행도 서울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김 의원 한 사람의 주장을 민주당 전체의 당론으로 볼 순 없습니다. 부산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의원들은 산은 부산 유치를 위해 고군분투 중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방 소멸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지난 정부에서 이전 수준을 뛰어넘는 대규모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던 점을 돌이켜 보면, 민주당 내에서 사그라들지 않는 산은 부산 이전 반대 목소리는 과연 노무현 정신을 잇는다는 민주당이 맞는지, ‘억강부약’을 강조하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맞는지, 시민들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합니다. 균형 발전을 무시한 채 수요가 많은 곳에 온갖 공공 서비스를 집중한다면, 살아남을 지방이 얼마나 될까요.
‘부산 촌동네’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한국관광공사 부사장의 망동이 어쩌면 표나게 드러난 것일 뿐, 산은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민주당쪽 의원들의 머리 속에도 ‘수요도 없는 부산에 무슨 산은’이라는 인식이 깔린 것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진보와 보수를 떠나 지방은 수도권 일극주의와 대립할 수밖에 없는 양상입니다. 결국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눈을 밝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한 진영 논리를 넘어 사안에 따라 비교하고 분석해봐야 합니다. 갈수록 복잡 다양해지는 사회, 유권자의 지혜도 더 필요한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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