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방문 직전 외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내비쳐 많은 논란을 낳았습니다. 윤 대통령이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로도 후폭풍은 가라앉지 않고 있는데요, 유라시아교육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재혁 부산외대 명예교수는 우크라이나 사례를 들어 21세기 우리 외교의 균형 회복을 촉구합니다. 우크라이나 위정자들의 편향적인 외교 행보가 급변하는 세계 정세와 맞물려 자국을 전쟁터로 만드는 우를 범했다는 겁니다. 이 교수는 조선시대 양대 호란까지 갈 것 없이 우크라이나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반도 주변 4강 외교에서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지는 말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든 러시아든, 어느 한쪽에 무기를 제공하는 것은 전쟁에 관여하는 행위가 됩니다. 무기를 제공받지 못한 전쟁 당사국으로부터 우리는 적대국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논쟁을 떠나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에 대한 인식이 무기 공급 관련 판단의 근저에 깔려 있는지 궁금합니다. 살상무기 공급은 1년 넘게 지리한 소모전과 대리전으로 치러지는 우크라이나전쟁을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하고, 양국 피해자 수만 늘릴 뿐입니다. 국적을 떠나 더 많은 인명 살상을 초래하는 겁니다. 게다가 러시아에는 2021년 기준 우리 교민 16만 8526명과 기업 150여 곳이 남아 있습니다. 한국이 러시아의 적대국가가 될 경우 현지 교민 안전이 어떤 위협을 받을지, 기업의 자산과 무역 거래는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2차 대전 후 독립한 국가 중 가장 성공적으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가치를 실현해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인데, 고작 어느 한 쪽에 무기를 공급하며 더 많은 인명을 살상하게 만들며 스스로 전쟁 수렁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인간 존엄 논리만으로 살상 무기 제공을 반대하기에 왜소함이 느껴지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미 우리들은 속도와 효율, 한 단어로 줄이면 ‘돈’이 인간 존엄, 범위를 좁히면 ‘안전’에 때로는 우선할 수 있다고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부산 영도에서 발생한 스쿨존 초등학생 사망사고, 일터에서 끊이지 않는 산재 사망사고, 근로시간 상한 주69시간제, 더 멀게는 세월호와 각종 물류·냉동창고 폭발 사고 등의 이슈를 보면 인간 존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진정 나아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떨어지는 출생률을 높이려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지만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없고, 돈의 가치가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세상이기에 아이들이 사라지는 나라가 되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몇몇 제도 개선책으로 이런 사고와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지, 그런 대증요법보다 좀 더 근원적인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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