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을 것 같다. 재미없으면 나가자.” 1일 오후 ‘소년들’을 보러 갔을 때 기자 옆자리에 앉은 관객들이 나눈 대화입니다. 사실 기자도 이 영화에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건에 큰 관심이 없었고, 2017년 개봉한 영화 ‘재심’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옆자리 관객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고, 기자도 깊이 몰입한 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영화는 1999년 2월 6일 새벽 발생한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다룹니다. 당시 3인조 강도는 가게 안에 있던 70대 할머니를 포함한 가족 3명의 눈과 입을 테이프로 막고 금품을 빼앗아 도주했는데, 이 과정에서 숨이 막힌 할머니가 질식사했습니다. 경찰은 사건 발생 9일 만에 인근에 살던 19~20세 청년 3명을 범인으로 지목했고, 상고심 끝에 징역 3~6년 형이 선고됐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해 허위자백을 한 것이었고, 만기 출소한 3명은 2015년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으로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영화는 이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관객의 몰입을 돕기 위해 상당 부분 각색을 거쳤습니다. 주인공이자 열혈 경찰인 황준철(설경구)부터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실제로 재심을 주도한 인물은 박 변호사였습니다. 극중 황준철은 ‘미친개’로 불리는 불도저 같은 경찰입니다. 한번 문 나쁜 놈은 절대 놓아주지 않는 그는 완주경찰서 수사반장으로 부임한 뒤 ‘우리슈퍼 사건 진범을 알고 있다’는 제보 전화를 받습니다. ‘우리슈퍼’는 ‘나라슈퍼’의 이름을 바꾼 겁니다. 이미 1년 전 수사가 종결된 사건이지만, 준철은 제보자를 만난 뒤 사건을 캐기 시작하고 이내 이상한 점들을 발견합니다. 경찰이 제시한 증거들이 앞뒤가 맞지 않고, 아무리 봐도 소년들은 범인이 될 수 없습니다. 교도소까지 찾아가 소년들을 만난 준철은 경찰이 거짓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폭행과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준철은 무고한 소년들을 구해보려 애쓰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습니다. 경찰의 가혹행위로 인한 트라우마에 휩싸인 소년들은 잔뜩 겁을 먹어 위축됐고, 숨진 할머니의 딸도 ‘지긋지긋하다’며 준철의 얼굴도 보지 않으려 합니다.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습니다. 소년들을 잡아넣었던 경찰대 출신 엘리트 최우성(유준상)과 그 똘마니들이 ‘빌런’입니다. 서장의 신임을 받는 우성은 ‘다 지난 사건을 들쑤시지 말라’며 준철을 압박합니다. ‘미친개’ 준철은 이에 굴하지 않고 수사를 이어가 진범들을 찾아냈지만, 검찰까지 방해공작을 펼치자 좌절합니다. 시간이 흘러 16년이 지났고, 소년들은 재심을 청구합니다. 그러나 이번엔 준철이 소극적입니다. 이 사건으로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준철은 진급이 막혔지만, 우성은 승승장구했습니다. 무엇보다 소년들의 무고를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진범의 진술을 받아낼 길이 요원합니다. 영화는 자칫 뻔할 수 있는 재심 영화이지만, 사건이 발생한 1999년과 준철의 수사가 진행된 2000년, 재심이 열린 2016년을 오가는 편집으로 지루함을 덜어냈습니다. 극의 초반에는 등장인물 간 관계를 비롯해 의아한 대목들이 있는데, 중반부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2000년 당시 한적한 마을의 모습을 재현한 장면들은 꽤나 디테일해 향수를 부를 법합니다. 전체적인 플롯(흐름)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소년들과 설경구 측에 이입할 수 있도록 감정선을 끌고 가는 완급조절이 훌륭합니다. 준철과 우성의 대결구도 역시 흥미를 더합니다. 경찰 중에서도 ‘갑’인 우성이 국가권력을 대변한다면, 준철은 그 국가권력에 희생당한 힘없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합니다. 관객들은 강인해 보이지만 나약한 면도 있는 인간적인 캐릭터인 우성에게 이입하게 되고, 그가 국가권력을 향해 들이받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준철 캐릭터의 매력은 설경구의 열연에서 나옵니다. 사실 기자는 준철의 별명이 ‘미친개’라는 점을 알려주는 극 초반부터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토록 많은 한국영화에서 나온 ‘미친개’ 캐릭터가 또 나오다니, 혹시 클리셰 범벅의 진부한 영화가 아닐까 하는 우려였습니다. 압박에 굴하지 않고 상사에게도 대드는 ‘미친개’ 캐릭터는 너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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