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부터 코믹함을 내뿜는 영화 ‘용감한 시민’의 감독 이름을 보고 놀랐습니다. 박진표 감독은 ‘너는 내 운명’(2005), ‘그놈 목소리’(2007), ‘공범’(2013) 등 주로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들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박 감독의 신작인 ‘용감한 시민’은 정의감을 숨기고 조용히 살아온 기간제 교사 ‘소시민’(신혜선)이 법도 통하지 않는 절대권력을 등에 업은 학교폭력 가해자 ‘한수강’(이준영)을 상대하는 이야기입니다. 소시민이 부임한 무영고등학교는 학교폭력 예방 우수 표창을 받은 학교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완전 딴판입니다. 이 학교 재단과 연줄이 있는 한수강은 분노를 유발하는 안하무인 캐릭터입니다. 학교폭력 사태로 이미 2년을 유급당했는데도 집안의 재력과 권력을 믿고 또래를 괴롭힙니다. 동급생인 진형(박정우)을 때리는 소리를 교내 방송으로 중계하고, 교사들조차 수강에게 벌벌 떱니다. 아빠가 검사라는 설정에서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아들의 학폭을 무마한 사실이 드러나 낙마한 정순신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갑중의 갑’인 한수강과 비교하면 기간제 교사인 소시민은 ‘을중의 을’로 보입니다. 잘 나가는 프로 복서였지만 가난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꿈을 포기했던 소시민에게 이제 최우선 목표는 정규직 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재단을 쥐락펴락하는 한수강의 심기를 거슬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선배 교사들도 시민에게 한수강의 패악질을 못 본 척하라며 ‘눈 감고 귀 막고 다니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한수강의 만행이 시민의 정의감을 자극합니다. 참다 못한 시민은 고양이 가면을 쓰고 수강을 쥐어패며 ‘참교육’에 나섭니다. 김정현 작가가 그린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용감한 시민’은 교권 추락과 학교폭력, 비정규직 문제 등 시의성 있는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려 애씁니다. 언어유희 개그나 콩트를 적절하게 활용한 유머 포인트의 타율이 나쁘지 않습니다. 영화가 내세우는 포인트는 뚜렷합니다. 일부 홍보 포스터를 보면 예측할 수 있지만, 결국 영화는 시민과 한수강의 주먹다짐으로 이어집니다. 선 넘는 행동으로 관객의 분노 게이지를 잔뜩 채운 수강이 시민에게 시원하게 얻어터지는 모습이 통쾌함을 안깁니다. 법과 제도로 벌하지 못하는 나쁜 놈을 두들겨 팬다는 이야기 흐름은 ‘범죄도시’와 아주 유사합니다. 많은 한국 관객들이 사랑하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면, ‘용감한 시민’은 이미 많은 관객에게 익숙한 범죄도시 시리즈와 별다른 차별점이 없습니다. 형사가 교사로, 범죄자가 학생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통쾌한 맛이긴 한데, 너무 익숙한 맛이라 새로울 게 없습니다. 물론 마동석과 정반대의 날씬한 체형을 가진 신혜선이 건장한 남성을 제압하는 그림이 신선하기는 합니다. 통쾌한 한 방을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다는 점도 고역입니다. 한수강이 저지르는 학교폭력은 수위가 상당해 참고 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교사인 소시민에게 성희롱과 추행까지 하는 장면은 분노와 함께 불쾌감까지 유발합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신혜선은 언론 인터뷰에서 “보는 분에 따라 학폭 장면이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용감한 시민’은 사회적 고발을 하려는 영화가 아니라 판타지물에 가깝다”면서 영화의 핵심은 “내 안에 가지고 있던 용기를 꺼내주고 대리만족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도 몰입을 방해합니다. 실제로 학교폭력이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긴 하지만, 이 영화 속 무영고 같은 막장 학교는 실존할 수 없습니다. 원작인 웹툰의 설정을 옮겨오면서 생긴 한계로 보입니다. 작위적이고 진부한 연출도 아쉬움을 남깁니다. 특히 결말부는 개연성이 너무 떨어져 유치하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또 무술에 통달한 소시민만 가능한 정의구현이라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치 못합니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는 인상적이었습니다. 할 말 꾹꾹 참고 직장에 다니는 비정규직을 맡은 신혜선의 연기는 감정이입을 부릅니다. 안 그래도 부산은 5년 연속 비정규직 근로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최근 접한 터라 씁쓸합니다. 화려한 액션까지 소화하는 신혜선의 모습에서는 반전 매력이 느껴집니다. 이준영도 가수 출신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사이코패스 악역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신혜선은 액션 연기를 위해 수개월간 액션학교에서 훈련을 받았고, 이준영은 심리적으로 힘들어 촬영 중 울기도 했다는 후문입니다. 몇몇 아쉬운 대목이 있는 ‘용감한 시민’이지만, 시의적절한 소재와 선명한 메시지는 울림을 주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학폭도, 권력형 학폭 무마도 영화 속 판타지로만 남아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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