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만 놓고 보면 흔하디 흔한 힐링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작품엔 묘한 흡인력이 있습니다. 우선 각 캐릭터의 개성이 확실하고 입체적입니다. 평소에도 학교 밖으로 좀체 벗어나지 않는 외톨이 폴은 외유내강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면도 나약합니다. 젊었을 때 품은 학문의 뜻은 접었고, 제대로 된 연애도 못했습니다. 어느덧 중년이 된 폴에게 남은 건 자기합리화입니다. 폴은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잘 나가는 동창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앵거스는 수려한 외모와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이지만 성격에 하자가 있습니다. 툭하면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내뱉어 동급생과도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폴의 본성은 착해 보입니다. 영화엔 타지 생활에 힘들어하는 한국인 학생도 등장하는데, 폴은 이 친구를 따뜻하게 대합니다. 순수한 구석이 있는 앵거스가 엇나가게 된 데는 남모를 사연이 있습니다. 주방장 메리도 중요한 인물입니다. 메리는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을 늘 그리워하며 때때로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지는 중년 여성입니다. 메리의 아들은 장래가 촉망받는 이 학교 학생이었기에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원치 않게 동고동락하게 된 이들은 처음엔 삐걱거립니다. 특히 폴과 앵거스는 도무지 친해질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폴은 융통성이라곤 없는 원칙주의자에다 학교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 은둔형 인간인데 반해, 앵거스는 자유분방하고 혈기왕성한 말썽쟁이 10대 학생입니다. 게다가 폴은 부모를 잘 만나 호의호식하는 앵거스 같은 학생들을 아주 싫어합니다. 하지만 세 사람은 함께 서로를 알아가며 마음의 벽을 허물어뜨립니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상처를 살펴보게 된 이들은 서로를 보듬어 주고 더 나은 사람이 됩니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코믹’이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지만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유쾌함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외롭고 우울한 이들을 한 데 모아 놓고도 재치 있는 대사와 시트콤을 보는 듯한 상황 연출로 자연스러운 웃음을 자아냅니다. 객석 곳곳에서 피식피식 웃는 소리가 들릴 정도입니다. 배우들의 열연도 한몫했습니다. 알렉산더 페인의 대표작인 ‘사이드웨이’(2005)에서 호흡을 맞췄던 폴 지아마티의 연기가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 줍니다.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중년 여성을 연기한 랜돌프, 입체적인 캐릭터인 앵거스를 맡은 세사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세사는 영화를 촬영한 학교의 졸업반 학생인데, 이번 작품 오디션을 통해 배우로 데뷔하게 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