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8시, 4000석이 넘는 규모를 자랑하는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이 관객들로 가득 찼습니다. 임시로 의자를 추가 배치해야 했을 정도로 많은 관객이 몰려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작품 ‘플로우’가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은 이유는 뭘까요. ‘플로우’는 애니메이션계 칸영화제로 불리는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관객상, 심사위원상, 음악상, Gan Foundation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한 화제작입니다. 원인 모를 대홍수가 벌어진 지구에서 주인공인 검은 고양이가 살아남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고양이는 물을 무서워하고 다른 동물들도 멀리 합니다. 그런데 홍수 때문에 여러 동물과 함께 한동안 배 위에서 지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싫어하는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된 고양이는 이 기묘한 모험에서 연대와 교류를 경험하고 점차 성장합니다. 영화의 최고 매력 포인트는 눈을 사로잡는 영상미입니다. 안시영화제에서 ‘어웨이’(2019)로 콩트르샹상을 수상했던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동물들의 움직임을 완벽히 재현하면서도 캐릭터들을 사랑스럽게 묘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모션 그래픽으로 구현한 움직임은 아주 현실적인데, 부드러운 모델링을 통해 귀여운 이미지를 유지한 겁니다. 이 탁월한 완급 조절로 관객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색다른 영상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예컨대,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디즈니 만화영화 ‘라이온 킹’(1994)은 특유의 만화적 연출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개성 강한 그림체로 구현한 영화 속 동물들은 창조된 가상의 캐릭터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런 만화영화의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실사영화입니다. 2019년 리메이크한 실사영화 ‘라이온 킹’은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실제 동물과 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현실적인 묘사가 오히려 부자연스럽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플로우’는 만화영화와 실사영화의 경계에 있는 듯한 연출로 우리에게 익숙하던 애니메이션들과는 다르다는 인상을 안깁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요한 특징은 대사가 없다는 겁니다. 동물들의 울음소리와 표정, 동작만으로 감정을 표현합니다. 그런데도 관객이 감정선에 충분히 이입할 수 있을 정도로 연출에 세심하게 신경 썼습니다. 캐릭터들의 개성도 돋보입니다. 예민하고 내성적이지만 때로는 용맹하고 본능에 충실한 고양이, 귀엽고 사교적인 래브라도 리트리버, ‘귀차니즘’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든든할 땐 든든한 카피바라 등 캐릭터마다 고유한 개성을 부여했고, 이들의 조화로 이끌어내는 연대라는 메시지가 마음을 움직입니다. 겁 많던 고양이가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180도 변하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질발로디스 감독은 이날 영화 상영에 앞서 관객과 만난 자리에서 사실적인 묘사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밝혔습니다. 예를 들어 카피바라 캐릭터의 울음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동물원을 찾아갔는데, 도통 울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울음소리를 따냈지만, 예상과 달리 너무 음이 높아 영화에 쓰기엔 부적절했습니다. 결국 카피바라가 내는 소리는 가장 이미지가 비슷한 새끼 낙타의 울음소리로 대체했습니다. 영화는 칸영화제에서도 극단의 호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플로우’를 관람한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내가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꿈꾼다면 ‘플로우’가 웅장하고 숨 막히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내년 상반기에 국내 개봉할 예정입니다. 
완성도 높은 담백한 인권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보리스 로즈킨 감독은 세 번째 장편 연출작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에 대해 “흔히들 알고 있는 관광지로서의 파리와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서 심사위원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유럽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인 이민자 문제를 다룹니다. 파리에서 자전거로 음식 배달 일을 하는 주인공 술레이만(아부 상가레)은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난민 신청자입니다. 영화의 원제인 ‘술레이만의 이야기’처럼, 극은 철저히 술레이만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술레이만이 합법적 난민이 되려면 필요한 게 너무 많습니다. 이틀 뒤면 난민 심사 면접인데, 노숙자 수용소에서 지내는 배달 노동자 신분인 술레이만에게 하루는 너무 짧습니다. 그가 시간에 쫓기는 이유는 결국 돈 때문입니다. 필요한 서류를 얻으려면 난민 브로커에게 돈을 줘야 하는데, 난민이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마땅히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배달 허가증을 빌려서 일을 하다 보니 본인 확인 절차가 필요할 때마다 허가증 주인에게 달려가야 합니다. 또 허가증을 빌려준 대가로 계정 주인에게 돈을 줘야 하니 다른 배달부보다 갑절은 더 열심히 일해야 하고, 수용소에서 잠을 자려면 버스 막차 시간에 늦지 않게 정류장에 도착해야 합니다.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와중에 짬을 내 브로커에게 교육을 받고,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 만한 가짜 사연을 통째로 외워야 합니다. 영화는 술레이만의 숨 가쁜 48시간을 속도감 있게 그려 내 관객이 그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핸드헬드 촬영을 적절히 사용한 현장감 넘치는 연출이 박진감을 더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48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술레이만은 면접관 앞에서 준비해 둔 거짓 사연을 늘어놓습니다. 뻔하고 식상한 가짜 이야기를 듣던 면접관은 진짜 사연을 말해보라고 요구합니다. 잔뜩 긴장한 술레이만은 심하게 몸을 떨기 시작합니다. 영화 클라이맥스는 바로 이 마지막 신입니다. 정신 없이 흘러간 48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건 사고로 켜켜이 쌓아 올린 긴장감이 주연 배우의 열연과 맞물려 폭발적인 몰입감을 낳습니다. 영화는 유럽 난민 수용 시스템의 맹점을 꼬집는 한편 휴머니즘과 온정주의를 불러일으킵니다. 순수하지만 너무도 불행한 청년에게 누구나 연민을 느끼고 그를 응원하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