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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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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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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손흥민이 불러온 ‘우리’… 다시 ‘우리’를 되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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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손흥민이 팀을 바꿔 놓고 있다. 여기서 팀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니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다. 올 시즌 토트넘은 팀 성적도 성적이지만, 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22일 현재(한국시간) 토트넘은 프리미어리그 5위다.
시즌 초반만 해도 영국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은 토트넘의 성적을 팀의 간판 케인의 이적, 잘 알려지지 않은 안지 포스테코글루 신임 감독 선임, 전성기가 지났다는 손흥민의 에이징 커브(Aging Curve) 등 여러 가지 이유로 10위권 정도로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열리고 경기가 진행되면서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던 답답했던 과거 팀과는 전혀 다른 팀이 됐다. 케인 중심의 단순한 공격, 수비 위주의 답답했던 전술은 거의 사라졌다. 올 시즌 토트넘을 바꾼 것은 신임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수비라인을 끌어올린 공격형 전술도 있지만, 새로운 캡틴 손흥민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팀 불화 등으로 분열된 팀을 ‘우리 클럽(Our Club)’ ‘우리 팀(Our Team)’으로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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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초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팀의 전력 보강을 추진하며 손흥민에게 주장 완장을 맡겼다. 그게 올해 8월이었다. 손은 토트넘 입단 8년 차지만 주장단 같은 팀의 리더 그룹에 속했던 적은 없었다. 토트넘은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 서유럽 국가 백인 선수 위주로 긴 시간 주장단을 구축하며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들었다. 호주 출신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이것을 과감히 깼다. 팀의 전면 쇄신이 필요한 상황에서 특정 국적을 떠나 동료, 팬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는 선수에 주목했고, 손을 주장으로 발탁한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주장을 맡고 있는 손은 준비된 캡틴이었다. 캡틴 손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토트넘을 ‘원팀’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중요한 순간에는 개인주의가 튀어나오는 유럽·남미 선수들과 달리 배려와 양보에 익숙한 손흥민은 팀을 하나로 묶었다. 팀을 언급할 때도 ‘우리 팀’이란 말을 달고 다녔다. 자신이 골을 넣고도 '내 골'이 아니라 '팀의 골'이라고 했다.
‘우리’라는 단어가 주는 힘은 대단했다. 어느 순간 토트넘 선수들도 경기에 대해 언급할 때 ‘우리 팀’ ‘우리 토트넘’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일종의 한국식이다. 개인주의의 서양에서 축구를 잘하는 것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캡틴 손의 품성에 조금씩 동화됐다. 토트넘은 가족처럼 원팀으로 뭉쳐졌다. 시즌 초반 ‘리그 1위’ 질주의 한가운데 바로 ‘우리’가 있었다. 이후 토트넘은 경기에서 잇달아지며 주춤한 적도 있었지만, 다시 ‘우리’를 앞세워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유럽의 외국 선수들은 그냥 ‘클럽(club)’이라 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팀보다는 자신의 개인 성적을 우선시하고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를 내세운 손의 리더십은 달랐다. 선수 생활 보여준 그의 겸손과 헌신, 밝고 착한 심성은 그의 리더십과 결합해 동료들과 구단 관계자, 팬들의 믿음과 열정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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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은 축구를 철저하게 팀 종목으로 대한다. 자신이 골을 넣기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고, 우리 팀이 승리할 수 있는가를 앞세운다. 공격수로서 수비 가담도 열심히 하고 동료도 챙긴다. 지난 11일 펼쳐진 뉴캐슬 전에선 후반 페널티킥 골을 넣기는 했지만, 그에 앞서 팀 동료들에게 두 차례나 골로 연결하는 결정적인 지원을 해줘 두 개의 ‘도움’을 기록했다. 전방 공격수로 이미 영국 프리미어리그 최고 선수임에도 동료를 위한, 그리고 팀 승리를 위한 축구를 더 중요하게 여길 정도다.
캡틴 손은 공격수 히샬리송이 긴 부진에 빠졌을 때, 언론과 팬들의 질타를 앞장서 막아내며 용기를 북돋워 주기도 했다. 셰필드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5라운드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2 대 1 역전승의 주역이 됐던 히샬리송을 팬들 앞에 나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게 손흥민의 리더십이었다. “손흥민은 남쪽 스탠드로 히샬리송을 데려갔다. 오늘 엄청난 임팩트를 남긴 히샬리송을 축하받도록 하기 위한 너무나 사랑스러운 행동이다.” 토트넘 공식 채널 스퍼스 플레이의 해설가 롭 달리는 이렇게 말했다. 낮춤과 겸손 같은 동양적 가치, 캡틴 손의 이런 모습이 토트넘 팬은 물론이고 영국인들의 마음마저 훔쳤다.
동료 실수와 슬럼프를 지적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위로하며 낙오 없이 함께 가길 바라는 캡틴 손. 그가 바꿔가는 토트넘은 더 이상 수비만 하고 지나치게 케인에게 의존했던 나약한 팀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영국의 한 방송에서는 “어떻게 토트넘 선수들이 단 한 시즌 만에 이렇게 변화할 수 있었나”라고 얘기할 정도다. 한국 스타일이냐고 영국 현지에서 묻기까지 하는 손의 리더십에 포스테코글루 감독, 토트넘 동료들과 팬들 모두 그를 향해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캡틴 손이 앞장서 EPL에서 보기 힘든 팀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손은 개인적으로도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벌써 10골을 기록하며 EPL 역대 7번째 '8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 두 자릿수 득점'이라는 대기록도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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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불러온 ‘우리’라는 리더십과 그의 팀 내에서의 행동은 단순히 축구 경기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먼저 우리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어떻게 협력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준다. 더불어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동시에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을 보여준다. 일종의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그의 리더십과 팀워크, 공동체의식은 축구 경기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적용될 수 있는 가치이다.
최근 ‘우리’라는 공동체적 개념이 점점 옅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그가 불러온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가치와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근래 우리 사회는 남을 이겨야 내가 산다는 극단적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캡틴 손이 보여준 ‘우리’의 리더십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손흥민과 같은 리더가 보여주는 팀워크와 협력의 힘은 개인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더 큰 공동체의 성공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골을 넣은 선수뿐만 아니라 도움을 준 선수를 우대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협력을 우대하는 시스템과 문화도 만들어야 한다. 줄다리기처럼 반대 방향으로 당기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무조건 반대는 힘만 쓰고 제자리에 머물게 할 뿐이다. 때론 한 방향으로 협력해야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에서 새로운 리더들의 롤 모델이 되어줄 리더를 찾기란 점점 어려워진다. 현재 우리 사회의 리더들은 이익을 위해 쉽게 룰(Rule)도 바꾼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잘 사과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사라진 지 오래다. 손흥민의 ‘우리’가 다시 ‘우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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