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이 지난 20일 공개한 부산항 8부두 생화학방어시스템 센토(CENTAUR·부산일보 23일 자 1·4면 등 보도) 현장 취재는 처음부터 기묘했습니다. 기자단과 국방부, 부산시 관계자 등은 서면 롯데백화점에 집결해 대형버스를 타고 함께 8부두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사실 남구 대연동에 있는 집에서 감만동 8부두까지 바로 가면 수 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미군부대에 진입하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8부두가 군사시설이다 보니 보안 유지가 필요하겠지요. 그런데도 분명 우리 땅에 들어가는데 외국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처럼 대형버스를 타고 이동하니,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8부두는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우리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8부두에는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해 미군의 군수물자가 수시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북쪽의 판문점처럼 8부두는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 잡은 냉전의 상징이기도 한 셈이죠.
주한미군이 8부두에 생화학물질을 반입한 사건을 계기로 8부두에 얽힌 가슴 아픈 우리 근대사를 다시 한번 톺아봤습니다.
■대륙 침략에서 냉전 상징으로
현재 부산항의 6·7·8부두 원형은 남구 감만동과 우암동 일대 ‘적기만 매축 공사’로 완성됩니다. 일본 자본가 이케다 스케타다는 1934년 4월부터 1944년 말까지 적기만 매축(39만 7000여㎡) 공사를 진행합니다.
사실 일제는 1910년 이후부터 부산 앞바다를 매축해 여러 부두를 만들었는데, 이런 시설들은 일제의 대륙침략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8부두는 1950년 6월 25일 6·25전쟁 발발 뒤 미군 군수물자 수송지로 이용됩니다.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8부두를 통해 들어온 물건들은 부산의 서면 공구상가와 국제시장 등으로 유출되면서 부산 경제의 한 축이 됐죠.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8부두는 파월 한국군의 수송과 물자 보급을 담당하기도 했답니다.
이후 화물 종류별 전용 부두 건설이 필요해지자 1975년 8부두 공사가 시작됐고, 1980년 12월 30일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준공됩니다. 8부두는 기존 부산항의 각 부두에 산재해 있던 특수 시설물을 통합해 특수 화물 전용 부두로 축조됐는데, 당시 공사비로 126억 원이 들었습니다.
8부두는 현재까지 한국에 순환 배치되는 주한미군의 각종 무기와 장비가 국내로 들어오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실시하자 같은 해 2월 19일 한미 연합 전시증원(RSOI) 훈련이 실시됐는데, 그 시작은 8부두의 미군 물자 하역이었습니다.
2017년 2월 3일에는 주한미군이 자국에서 지뢰방호장갑차(MRAP)를 8부두에 들여오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선제타격론’ 추측도 쏟아졌습니다. 이처럼 8부두는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어김없이 빠지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8부두에서 주한미군 장비 하역을 돕는 한 업체의 관계자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주한미군이 8부두에 무기를 대거 들여오면 우리야 돈 벌어서 좋긴 하지예. 그런데, 전쟁 긴장에 기대 버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맘이 편치 않심더.”
■8부두 주둔 미군은 어떤 부대?
“부산항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나?” <부산일보>가 올 상반기부터 주한미군의 8부두 생화학방어 프로그램 보도를 하자 일부 독자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미군은 한국전쟁 때부터 8부두를 사용해왔습니다.
다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8부두 미군부대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현재 8부두를 운용하고 있는 미군 부대는 ‘제837수송대대(837th Transportation Battalion)’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에서 미군의 제809임시항만사령부가 편성돼 부산항을 사용했습니다. 이후 1997년 10월 1일 제837수송대대로 개편과 동시에 제599수송터미널단으로 예속됩니다.
837수송대대는 주한미군 물자 수송의 95%를 담당하고 있으며, 그 역할에 맞게 이 부대의 별명도 ‘화물왕(Kargo King)’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부대의 공식 마크가 거북선인데, 한 군무원이 평소 이순신 장군을 존경해 거북선 부대 마크를 디자인했다고 하네요.
837수송대대가 거북선을 내세워 한국인들에 친근하게 다가가려 했는지 모르겠지만, 8부두 일부를 민간에 개방해달라는 우리 정부의 줄기찬 요구에는 굉장히 비협조적이었습니다.
1995년 2월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대지진으로 기능이 마비된 일본 고베항 대신 부산항으로 물동량이 몰리기 시작합니다. 부산항이 극심한 화물 체증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미군이 무상점유하고 있는 8부두만 나 홀로 한가해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1996년 8월 항만청과 주한미군의 8부두 공동사용 합의 직전까지 이르렀지만, 미군의 과도한 요구 탓에 1997년 5월 8부두 공동사용 협상이 완전 결렬됩니다. 미군 측이 부두 유지보수 비용부담과 하역회사 지정 등 우리 정부가 받을 수 없는 요구를 해와 2년 동안의 협상이 물거품이 된 것이죠. 우여곡절 끝에 8부두는 2003년 3월이 돼서야 공동 사용이 이뤄집니다.
현재 8부두 4개 선석 중 2개 선석은 일반 부두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85번 선석은 5000t급 화물선을 수용할 수 있고, 86번 선석에는 1000t급 선박 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습니다.
주한미군은 8부두에 언제까지 주둔하려 할까요. 최근 주한미군이 8부두와 5부두 인근 55보급창 등의 시설을 북항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 원한다는 신호가 계속 감지되고 있습니다. 실제 올 6월 주한미군사령부 시설책임자가 북항 재개발 현장을 방문해 미군 부대 시설 이전을 원한다고 직접 밝혔다고 하네요.
어차피 북항 재개발과 등록엑스포 유치를 염두에 둔다면 북항 일대 산재한 주한미군 시설 재배치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만만치 않은 과제가 또 있습니다. 미군부대 반환 때마다 겪는 일이지만, 8부두와 55보급창 역시 독성물질로 뒤범벅돼 정화비용만 천문학적일 거라는 거죠. 결국 주한미군과 관련된 이 모든 역사적 부담은 분단된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이 감당해야 할 몫이겠죠.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