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정부의 조선산업 지원 정책에서 소외당한 부산이 대규모 컨테이너선 발주를 앞두고 뭉치고 있다. 부산시와 부산 상공계는 HMM(옛 현대상선)이 지난달 9척의 컨테이너선 발주를 발표하자 침체된 조선 업계와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시 차원에서 대대적인 수주전에 나서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1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HMM은 지난달 11일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대형 3사와 부산의 HJ중공업 등 총 4개 조선사에 8000TEU급 컨테이너선 발주 의향서를 전달했다. 해당 조선사는 지난 9일까지 제안서를 접수했고, HMM은 내부 검토를 거쳐 이번 주 중으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
지난해 해양수산부는 10년 안에 원양 컨테이너 선복량을 150만TEU 이상 끌어 올린다는 해양재건 가속화 계획을 세웠다. HMM을 중심으로 국내 조선사에 대형 선박 발주를 몰아준 것도 이 때문이다. HMM은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정부 기관이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부산시와 상공계, 시민단체까지 나서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HMM이 이번에 발주하는 선박이 메탄올 추진이 가능한 8000TEU급 컨테이너선이기 때문이다. 중형 조선소를 보유한 부산의 HJ중공업도 건조가 가능한 크기다.
그간 울산과 거제 등지에 위치한 대형 3사는 조선산업 지원 정책에 따라 별다른 수주전 없이도 여러 척의 대형 선박을 수주하는 혜택을 봐 왔다. 부산만 독(dock)이 협소하고, 설비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로 1만 TEU급 이상의 선박 수주에서 밀려나며 상대적 불이익을 감수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발주하는 9척은 모두 부산에서 건조 가능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부산시와 부산 상공계는 이를 수주해 고용과 투자 양면에서 활력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시의적절한 수주로 ‘일감 수혈’만 이루어진다면,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한 부산 경제로서는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계기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LNG 수요가 폭증하면서 대형 조선소는 LNG선으로 독이 꽉 찼지만, 중형 조선소는 오히려 일감이 부족하다”며 “한시가 급한 부산 조선업계에 단비를 내리려면 이번 수주가 꼭 필요하다”고 전했다.
수주전 양상이 긴박하게 돌아가면서 부산시뿐만 아니라 지역 상공계 전체가 나서서 발주처를 설득해야만 부산의 조선업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박인호 대표는 부산 시민이 지역 조선업 살리기에 좀 더 관심을 갖고 힘을 모아 줄 것을 당부했다. 박 대표는 “경쟁 격화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고사 위기에 처한 부산 조선업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결국 일감을 공급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며 “특히 HJ중공업은 최근 컨테이너선만 유럽선사로부터 8척을 수주하는 등 컨테이너선 건조에 최적화된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수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