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AI 디지털교과서의 운명은

입력 : 2025-01-08 18: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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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숙의 더 필요하다

국회, 참고서 격하 법률 통과
교육부, 재의요구권 요청 반발
AIDT 채택 여부 여전히 불투명
영포자·수포자 없앨 수업 혁명
합리적 교육 과정 위해 필요
교육 격차 해소 기대는 환상
전인적 발달 걸림돌 우려 상존
교육 현장 검증한 후 도입해야

AI 디지털교과서 채택 결정이 미뤄지면서 교육 현장이 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해 12월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AI 디지털교과서 영어 최종 합격본 시연 행사에서 관계자가 학생 맞춤 교육 방법을 설명하는 장면(위). 지난해 11월 29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AI 디지털교과서 중단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AI 디지털교과서 강행 규탄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AI 디지털교과서 채택 결정이 미뤄지면서 교육 현장이 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해 12월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AI 디지털교과서 영어 최종 합격본 시연 행사에서 관계자가 학생 맞춤 교육 방법을 설명하는 장면(위). 지난해 11월 29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AI 디지털교과서 중단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AI 디지털교과서 강행 규탄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새 학기를 두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인데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의 운명은 아직도 결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교육 개혁의 핵심 과제로 AIDT를 2025년 1학기부터 초·중등학교 일부 학년과 교과에 도입키로 했는데 국회가 야당 주도로 AIDT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 자료’로 격하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제동을 걸었다. 이에 교육부가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요청키로 하는 등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공방을 이어가는 중이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어느 박자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 교과서 vs 참고서 교육 현장 혼란

교육부는 2025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공통 교과인 영어, 수학, 정보 교과에 AIDT를 도입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 검정 심사를 통과한 12개사 76종의 AIDT를 공개했다. 그런데 국회가 12월 26일 AIDT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 자료로 격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면서 교과서 도입이 무산되는 분위기였다. 이럴 경우 AIDT 채택은 의무가 아닌 학교장 재량이 된다. 그런데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최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히면서 법적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회 교육위원회는 17일 ‘AI 디지털교과서 청문회’를 실시한다. 교육부와 여당, 야당의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시도교육청별로도 AIDT 정책 수용에 온도 차를 보이고 있어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황서운 부산교육청 중등교육과장은 “AIDT 선정과 관련해 일선 학교에서 문의가 잇따르는 등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며 “교육부 방침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2월 중순까지 최대한 선택을 늦춰 달라고 학교장에게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 학생 맞춤형 디지털 교육 대전환

AIDT는 인공지능(AI) 기능이 탑재된 태블릿PC를 통해 개인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는 도구다. 교육부는 2023년 6월 AIDT 추진 방안 발표를 시작으로 교사 연수와 인프라 확충을 진행하는 등 의욕적으로 추진해 왔다. 학생에게 맞춤형 학습 콘텐츠를 제공해 학습 흥미를 높이고 학습 격차를 해소한다. 교사에게는 학생 개개인의 학습 상황을 분석할 데이터를 제공함으로써 참여형 수업 설계와 맞춤 지도를 지원한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잠자는 교실을 깨우고 미래를 여는 교육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소득 격차 없는 평등한 교육 환경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도 제시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AIDT를 활용한 디지털 교육 대전환으로 공교육을 통한 학생 개개인 맞춤 교육을 실현해 영포자·수포자 없는 교실을 만들겠다”며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교육부는 2028년까지 국어, 사회, 역사, 과학, 기술, 가정 등 전 과목으로 AIDT를 확대한다는 로드맵도 세웠다.

■ 디지털 과의존·문해력 저하 우려

교육부의 의욕적 추진에도 불구하고 교육 현장은 거세게 반발했다. 교사는 물론이고 학생과 학부모 모두 디지털 과의존과 문해력 저하 우려를 제기하며 AIDT를 유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I 디지털교과서 중단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해 9월부터 한 달가량 진행한 AIDT 도입 중단 촉구 서명운동에 교사, 학생, 학부모 등 10만 명이 참여했다. 공대위는 국회에 △AIDT 교육 효과 검증 미흡 △학생 학습데이터 개인정보보호 체계 미비 △민간 기업에 대한 과도한 교육 재정 투입 △인지 중심 학습 편향 사교육 심화 등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촉구했다. 지난해 9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AI BUS 2024 콘퍼런스’ 교육 세션에서도 교사와 학부모의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학부모들은 AIDT의 효과에 대한 평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학생들이 디지털기기에 지나치게 노출될 위험만 안게 된다고 반발했다. 교사들도 학교 현장의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는데 학생 개인정보 데이터화에 따른 보안 문제 등 걱정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 교육부 일방적 밀어붙이기 혼선 자초

교육 전문가들은 AIDT가 이명박 정부에서 스마트 교육이라고 밀어붙였던 디지털교과서의 운명과 판박이라고 지적한다. 2013년 도입 예정이었던 디지털교과서도 확인되지 않은 학습 효과와 심각한 컴퓨터 중독에 대한 우려로 교육 현장이 떠들썩했다. 결국 ‘세계 최초’의 디지털교과서는 당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퇴임과 함께 학교 현장에서 사라졌다. AIDT도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숙의 과정도 없이 낯선 에듀테크 기술을 교육 현장에 전방위적으로 도입하겠다는 자체가 무리수라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현장 교사와 학부모의 우려에 아랑곳없이 밀어붙이며 반발만 키웠다. 지난해 8월로 예고했던 AIDT 검증도 11월로 밀리면서 졸속 추진 논란까지 자초했다. 조경선 전교조 부산지부장은 “학교 현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이유가 궁금하다”며 “교실은 학생이 집단으로 모여 사회를 배워가는 공간이기도 한데 문제은행식 디지털 학습 도구가 학업에 흥미를 잃은 학생을 변화시키고 수업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돌아봐야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CES)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합작 스타트업이 AI가 장착돼 아이가 문제를 풀면 정답을 체크해 주고 모르는 단어의 뜻도 가르쳐주며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싱크팰 태블릿’을 선보였다. 바야흐로 AI시대다. 학습 현장도 시대 변화에 맞춰 디지털 기술의 활용에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조현식 포천초등학교 수석교사는 “공개된 AIDT는 기능적 측면에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이 피드백을 통해 고도화시켜 가야 한다”며 “AIDT를 통해 교사 중심의 수업을 학생들이 참여하는 쌍방향으로 바꾸고 교육 과정을 합리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의 본질적 가치 위에서 에듀테크 활용을 고민해야 한다는 근본적 문제 제기도 만만찮다. 교육은 인공지능에 맡기고 교사는 인성만 담당한다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AI가 지적 학습 능력을 높이기는커녕 정신 건강과 전인적 발달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하는 게 현실이다. 교육은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생과 학생이 직접 상호작용하는 불확실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AI 기술로 획일화하고 계량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김한나 부산교사노조 위원장은 “AI를 코딩하고 새로운 기술을 창조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지 AI가 만든 세상을 터치만 하면 구현되는 걸 보고 문제 풀이만 반복하는 게 아이들 교육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근본적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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