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구에 거주하는 김 모(33) 씨는 6년 전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스스로를 집 안에 가뒀다. 그는 집 밖 외출을 하지 않고 외부와 단절된 이른바 ‘고립청년’이다. 가진 돈이 떨어지면 일용직 근로로 일상을 연명하면서 지낸 지 6년. 사회복지사가 김 씨의 집을 찾았을 때 김 씨 손톱은 몇 달째 자르지 않은 듯 길고 집안은 오래된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긴 고립 끝에 일상조차 무너진 것이다.
김 씨와 같이 오랜 고립을 겪고 있는 부산 청년 비율이 전국에서 수도권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청년 시기 방치된 고립은 중장년까지 장기화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지만 지역사회에서 고립청년 문제 대응책은 사실상 없다. 특히 청년 인구 감소세가 심각한 부산에서 지원 사각지대 속 고립청년 문제가 확대되면 청년 유출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8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펴낸 ‘고립운둔청년실태조사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부산지역의 고립은둔청년이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9%로 서울(25.3%), 경기(22.8%), 인천(8%) 등 수도권 다음으로 많았다. 은둔형외톨이는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아 그 숫자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2022년 부산복지개발원이 조사한 부산의 은둔형 외톨이 숫자는 7500명에서 많게는 2만 2500명으로 추정됐다.
고립청년은 외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사회생활을 거부하는 은둔형 외톨이, 교육 과정을 마쳤지만 진학이나 취업을 하지 않는 니트(NEET·구직 단념) 청년 등 사회와 연결되지 않고 고립된 만19~39세 청년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 고립청년 52.2%가 20대에 고립·은둔을 시작해 그중 28.6%가 3~5년 이상 장기화되는 것으로 타나났다. 고립문제가 일정 시기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애주기별로 이어지는 셈이다.
이에 고립청년은 초기 단계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정작 지자체별 고립청년 맞춤형 대책은 사실상 없다. 서울이나 경기, 대구, 광주 등과 달리 현재까지 부산에는 고립청년 지원센터가 한곳도 없다. 시는 2021년 7월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를 제정했지만 청년과 중장년 은둔형 외톨이를 묶어 대응하는 내용으로 고립청년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해운대구 정신재활시설 송국클럽하우스 이상석 사회복지사는 “중장년과 청년 은둔형 외톨이를 통합한 사업이 시행되고 있지만 청년층은 재사회화, 재취업을 목표로 하고 중장년층은 건강, 생활 관리 등을 원해 두 집단의 욕구는 엄연히 다르다”며 “청중장년층을 통합 지원하다 보면 청년들은 정책적으로 소외될 가능성이 커 장기적 상담, 사례관리를 통해 재사회화로 이끌어야 하는 고립청년 대책으로는 효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부산의 고립청년 문제를 방치하다가는 청년 유출 가속화 등 청년 전반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신라대 손지현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산은 기본적으로 청년 유출 문제가 심각해 남아있는 청년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패배감과 고립감이 팽배하므로 지역에서 고립청년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청년 전체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며 “고립청년 센터 설립과 활동비 지원 등을 통해 청년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지자체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