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 속 ‘조기 대선’ 민심 풍향계로 평가돼 온 이번 4·2 재보궐 선거 결과, 부산·울산·경남(PK)에서는 진보 진영이 사실상 승리를 거뒀다. 국민의힘은 불과 1년 전 열린 22대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을 지키는 데 일등 역할을 한 PK에서의 패배를 놓고 동요하는 분위기다. 특히 향후 열릴 수 있는 조기 대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지역 여권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4·2 재보궐 선거에서 교육감 1곳(부산)과 기초단체장 5곳(서울 구로구·충남 아산시·전남 담양군·경북 김천시·경남 거제시), 광역의원 8곳(달서구·강화군·유성구· 성남시·군포시·당진시·성주군·창원시), 기초의원 9곳(중랑구·마포구·동작구·강화군·광양시·담양군·고흥군·고령군·양산시) 등 23곳에서 치러졌다.
전국 유일 광역 단위 선거와 기초단체장 자리를 둘러싼 여야 후보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져 정치권 시선이 집중된 PK에서는 부산교육감과 거제시장 모두 진보 진영이 차지했다. 부산교육감 선거는 진보 성향 김석준 후보가 51.13%를 기록해 교육청 입성에 성공했다. 반면 보수 진영의 정승윤, 최윤홍 후보는 각각 40.19%, 8.66%에 그쳤다. 두 사람의 득표를 합하더라도 김 후보에 뒤진다. 거제시장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변광용 후보가 56.75%로 국민의힘 박환기 후보(38.12%)를 18.63%포인트(P)차로 압도했다.
이 같은 보수 진영의 패배는 PK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PK의 경우 최근까지 탄핵 찬성 비율은 높고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지지율이 우세하거나 팽팽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5~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한 결과, PK에서 탄핵 찬성 응답은 51%, 반대는 41%로 나타났다. 반면 정당 지지율에서는 국민의힘이 43%로 31%를 기록한 민주당을 앞섰다. 통상 국민의힘 지지층은 탄핵을 반대한다는 게 정치권 중론이지만 PK에서는 괴리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는 PK에는 탄핵에 찬성하면서도 여당을 지지하는 이른바 ‘중도 보수’가 다수인 까닭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여론에도 보수 진영은 부산교육감과 거제시장 재선거 과정에서 강성 우파로 분류되는 손현보 세이브코리아 대표나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를 동원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들은 부정 선거론과 윤석열 수호를 내세워 ‘보수 결집’을 노렸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번 부산교육감 선거에서 김석준 후보는 부산 16개 구·군 전체에서 승리를 거뒀다. 부산 내에서도 보수 지지세가 높은 해운대구, 금정구에서도 김 후보가 두 사람을 따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12.3 비상계엄을 지나고 국민의힘이 강성 우파와 손을 잡으면서 중도 보수층이 떠났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재선거 결과가 향후 열릴 수 있는 조기 대선과 내년 지방선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상대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지역으로 꼽혀온 PK에서 이례적인 성과를 낸 진보 진영의 지지층이 더욱 결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4일 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에 따라 민심의 향배는 더욱 예측불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조기 대선이 열리고 정권이 교체된다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PK 민심이 정부 여당(지금의 야당)의 중력에 더 끌릴 수도 있다. 가뜩이나 지역이 어려운 상황에서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중앙정부에 지역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여당 정치인을 선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번 재보궐 선거의 처참한 성적을 받아들이고 재정비해야 한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4·10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을 만들어줬던 PK가 무너진다면 보수 위기론이 본격 점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PK 여권 관계자는 “이번 재선거 과정 전체를 복기하면 국민의힘, 즉 보수 진영 자체가 안일한 태도를 보여왔다”며 “단순히 부산교육감, 거제시장 자리 하나를 빼앗기는 게 아니라 다음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했어야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집토끼를 결집시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는 중도층의 마음을 어떻게 끌어낼 것이냐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조사는 무선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