參議院으로 가는 길 (3)

입력 : 1960-07-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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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후보자의 정견과 관록 여섯번 투옥된 경력 불교출신의 항일지사 최범술씨(57)세 기호 18 본적 경남사천 민주당 공천

『참의원이 되려는 그것보다도 여러분에게 나의 과거를 말씀드릴수 있는 기회들로 생각한다』는 최범술씨의 연설은 역시 그가 부루교계의 중진이며 주지였다는 선입감을 제거하고도 다분히 설교적이었다.

최범술씨의 이름은 정치가로서보다도 일반에겐 해방후 진주에 설립된 불교재단의 해인대학장으로 취임하였다가 불교계의 분쟁으로 학장의 자리를 빼앗겨야할 무렵 장시일을 둔 소송과 성명전에서 서부경남도민들에겐 귀익은 존재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것 같다.

이번 민주당공천으로 출마한 최씨의 경력을 보면 거금 40년전 14세시에 다솔사에 입산, 3·1운동 참가로 일제에 피검 1년6개월의 감옥살이로부터 시작하여 해방전까지 6회나 투옥되었다는 것인데, 그가 항일운동을 꾸준히 해온 민족주의자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불교계의 혁신조직에도 참여했고, 제헌국회당시는 사 [기사내용 일부훼손] 있다. 최근에는 도덕재무장운동 세계대회에도 참가였는데, 그는 그의 알려진 「네임·밸류」와 민주당공천이란 힘을 믿고 득표의 승산을 가지려는것 같다.

그러나, 그의 친지들에 의하면 워낙 돈이 없기 때문에 그를 아는 사람들이 자기 돈을 써가면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어서 이 점에 득표의 한계가 있는것 같다.

"중소기업을 육성"

재정기반 튼튼한 혁신계

박재우씨(43)세 기호 20

본적 경남울산 사회대중당 공천

소위 혁신계열에서는 혁신연맹의 정상구씨와 이 박재우 양씨가 경남선거구의 참의원에 출마하였다. 소식통에 의하면 모두 「돈이 없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는 혁신계열 출마자중에서 박씨만은 비교적 재정기반이 튼튼하다는 이야기다. 「돈이 없어 혁신」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마는 양조장사장에 직물업사장이기도 한 박씨가 어떤 경위에서 혁신정치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는지 몰라도 약간 주목할만한 일이다.

더우기 전진보당경남도당 재정부장이었다는 경력을 볼때 이승만정권하에서 그러했다는 점에 비추어 상당한 각오를 하고 혁신운동에 뛰어든것만은 사실인것 같다.

그는 「특히 중·소기업체의 율성발전이 요긴한 이나라의 경제사정과 참의원의 직능대표적 성격에 비추어 실제종사자의 한사람으로서 그뜻을 의정단상에 반영시키고자 하는 뜻도 가지고 있다」고 출마의 인사에서 밝히고 있다.

동래고보졸업, 국민대학 경제학과를 마쳤다는 그는 현재 사업경영과 사대당 경남도당준비 재정위원장을 맡아보고 있는데, 정견발표에서의 그의 연설은 사대당공천은 되풀이하는 것이기는 하였으나, 상당히 조리를 따져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었다. 혁신에 편승하려는 것이 아니고 굳은 정치적 신념에서 출마한 혁신에서의 정열이 지속 반영되는날 그의 목적도 이루어질것 같다.

「돈은 없다」…자랑?

민주당골동격이란 평

박운균씨(67)세 기호22

본적 경남진주 무소속

『돈이 없어 인사장도 인쇄 못하였다』는 박씨는 벽보대금을 못낸 2명중의 한사람이다. 자기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는것 같고, 그의 지인들도 역시 그를 평하여 『민주당 골동품』이라고 하는 정도 철저한 민주당주의자? 인것 같은데 이번에 공천도 못받고 보니, 본인으로 봐서도 형편이 난처한것 같다. 물론 이것은 일부의 소식에 의하면 박씨는 신파인데 진주시당 고위층 모씨가 구파이어서 자파인물을 공천하기 위해 박씨를 제외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기는 하다.

보성전문상과 2년수료, 국민회합천군지부장, 진양군수(4282년), 국민회진양지부장, 해인대학후원회장 그리고 민주당진주시당 부위원장, 민주당중앙위원등이 그의 이력서 기재사항의 거의 모두이다.

들리는 바로는 항일운동을 하였다는 것과 경남전성에 산재하는 박씨종친회등이 그의 출마의 기반이라고도 하는데, 합동정견발표에서는 「내각책임제나 민·참의원의 구성만으로 정치가 잘된다고 자신을 가질수는 없는 일이다. 그보다도 위저어자의 법운영이 옳아야 하며,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변을 올렸다.

『내 키는 전국입후보자중에서 가장 큰데도 돈은 가장 없다』고 자랑?을 하였는데 『앞으로는 「데모」만 하면 모든 것을 잘할수 있으니 걱정할것 없다』는 선거연설은 그의 선거기반처럼 역시 불투명한 것이었다.

"민주경제를 확립"

단순하다는 경제계 중진

김달범씨(56) 기호 16

본적 경북청도 무소속

8·15 해방 익년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부산상공회의소 상임 특별위원등으로 일관하여 부산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경제계의 중진이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일이다.

이러한 기반을 중심으로 이번에 참의원에 입후보하면서서부터 일반 유권자들의 적지않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늘날의 정치가 경제정책을 최대의 여건으로 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특히 한국적 현실이 보다 그러하기 때문에 경남 28명의 입후보중 상공계를 대표한 김달범씨는 특이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가 정견발표회에서 「이제까지의 관권경제로부터 민주경제로 전환하고 농민, 노동자, 소시민을 잘 살수 있도록 하지 못한다면 국가의 번영은 곤란한 일이다」라고 말한 것은 실경제인으로서의 그의 말이기 때문에 수긍할수 있는 일일는지도 모른다.

「해방후 15년간 나는 어느 당파에도 속하지 않았고, 단순한 경제인으로서 살아왔다」는 것은 그가 말하기 전에 이미 누구나가 잘알고 있는 사실인 것이다.

부산제2상업을 졸업후 해방전까지 10여년간 은행생활을 하였고, 해방후는 잠시 동안 대중신문사장에 취임한 일도 있는 씨는 부산대학, 개성중학사친회 간부로 육영사업에도 힘쓰고 있는데 김해김씨, 허씨중앙종친회장으로 선임되어 이 방면에서도 적지 않는 득표가 예상되고 있다.

"나라 위해 몸바쳐"

은퇴상태에 있다가 다시

서상호씨 73세 기호 21

본적 경남충무시 무소속

28명 참의원 입후보자중의 최연장자이나 『어느 정도의 일을 담당하여 여러분의 대변자가 될수 있는 것인지 심히 두려운 일입니다마는 죽는 그날까지 이나라와 이겨레를 위하여 몸을 바치고자 하오며』 운운하는 인사도 허사는 아닌것 같다.

제2대 민의원의원을 지냈다는 것 외에 무소속출마자인 이 서씨의 경력등에 유권자들의 대부분은 별로 관심을 표명하지 않고 있는게 사실이다. 약력은 기미독립운동으로 투옥,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 설립 및 동교상입이사, 시대일보사전무, 경남은행전무 등인데 제2대 민의원을 지낸후 약10년간은 정계에서 은퇴상태에 있다가 이번에 출마한 것이 사실이다.

서상호씨는 부산공설운동장에서의 합동정견발표때 얼굴을 보였을뿐 지방에서의 합동정견발표회에도 참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고, 부산에서의 선거운동도 볼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다 한가지 수긍되는 점은 서상호씨는 부산서구 갑구에서 이번에 민의원에 출마한 전법무부장관 서상권씨 그리고 통영군 선출 제4대민의원이고 이번 선거에도 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한 서정귀씨와 일가라는 점으로 여기 연관성을 맺고, 출마한것 같다는 견해이다.

종반전에는 이 지음 한동안은 서상권씨 선거사무소에서 함께 일을 봤다는 서상호씨의 선거운동원들도 별로 움직임이 없고, 마산, 충무등지에서 약간 활발한 득표공작이 행하여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굽힘없이 항쟁했다

민주당에 정권이양토록"

오위영씨 59세 기호 19

본적 경남부산 민주당공천

『과거 10년동안 소생이 정계에 투신한 이래 여러분의 한결같은 성원과 협조는 저로 하여금 이승만 정부로부터 가장 심한 증오와 제거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굽히지 않고 항쟁할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것은 오위영씨의 참의원 입후보인사의 1절인데 민주당신파의 중진으로 그가 지니는 정치적 비중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가 하마동 정견발표회때 제2반으로 부산공설운동장에서 차례가 상당히 늦어 일부 군중들은 흩어지기 시작했으나, 그가 연단에 오르자 박수로써 청중들은 다시 모여들기 시작한 그것만으로도 그의 인기의 일단을 엿볼수 있을것 같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좋은 공약을 내세웠으나, 자유당 정권하에선 실시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냉철한 비판을 가지고 우리 민주당에게 한번 정권을 맡겨봐 달라』고 했다.

돈있고 이제는 권력까지 가지게 될 오위영씨가 이 선거연설에서 받은 유권대중들의 호응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두고 볼일이다.

그의 이력은 너무도 많은 항목이 있어 추려내기에도 곤한을 느낄 정도인데, 부산상업졸, 일본신호고등상업졸업, 해방후 조선신탁은행두취, 4283년 제2대민의원(울산 갑구), 제4대 5·2선거 부산동구 을구선출민의원, 민주당원내총무등

"의식주 해결 먼저"

자유당때의 관록 찬연

최갑환씨 52세 기호 17

본적 경남고성 무소속

4·19혁명이전 자유당 정권하에서도 최갑환씨의 이름을 가끔 들은 일이 있었음을 유권자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자유당소속 제3대민의원이었고, 제4대민의원선거때는 자유당의 고성공천자결정에서 떨어졌고-그러면서도 3·15 정·부통령선거를 맞이할땐 자유당 중앙위원회에 동당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위원회 제3부차장이라는 감투까지 쓰고 있었다.

지나간 일들은 물위에 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고 새로운 세대 7·29의 총선에 최갑환씨는 이제 무소속이란 새로운 운자를 쓰고 국민개개인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문제가 선결이며, 노동조합을 육성해야 된다. 나는 일생을 통하여 노동조합운동을 하겠다고 참의원입후보 합동정견 발표회에서 피력하였다.

그러기는 하나 최갑환씨와 노동조합운동이란 기이한것 같기도 하다. 해방직후의 부산치안가령부사령, 경남도보안과장, 사변후의 부산시사회과장, 대한불교 중앙종회장, 자유당중앙간부, 그 어느것을 보아도 노동조합과 결부될 만한게 없다.

그러나 그가 못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정계에 그것도 참의원을 해보겠다는 열의만은 평가되어도 좋을것 같다.

사실 돈이 없다고 하여 조직활동도 없고, 운동원들도 눈에 띄지 않으며, 다만 이름 석자만 믿고 나왔다는 그의 측근자의 말이 거짓은 아닌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