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쿠호문화는 7세기후반~8세기초반(덴무,지토왕시대)에 걸친 문화다.
이 문화는 통일신라의 불교와 유교를 전수받아 기틀을 확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일본 국보급 유물인 나라의 약사사 동탑과 약사삼존상,호류사 금당 아미타정토그림,다카마쓰고분의 벽화,아름다운 불상으로 대표적인 고후쿠사 불두 등이 오늘날까지 빛나고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일본 문화 형성에 큰 역할을 했지만 특히 하쿠호문화는 신라문화의 복사판과도 같았다.
일본 율령도 신라율령을 이식해 준 것이며 다이카개신이후 강력한 정권 확립에 기여했고 야마토정권을 탄생시키는 기반을 이룩해 줬다.정치제도뿐 아니라 선진된 토목기술은 물론 제방을 축조하는 축제술과 조선술까지 일본에 전해줘 도처에 한인의 연못 이라는 이름까지 붙인 곳이 많고 삼국 음악도 전해져서 고구려악,백제악,신라악 등으로 불리우면서 일본 음악의 주류를 이루기도 했다.
이같은 통일신라 문화를 일본에 전해 준 것은 일본이 견 신라사( 신라사)를 파견하여 지도해 주기를 요청함으로써 이뤄진 사실은 역사 기록에도 남아 있다.원효 강수 설총 등 고승들이 건너가 불교와 유교를 지도한 기록으로도 이를 입증해 준다.
일본서적 출판 에는 그러나 하쿠호문화의 성립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도 않았다.다만 텐무천황은 스스로 정치를 했고 당나라(중국)에서 배운 율령에 따른 정치제도를 만들려고 했다.이 무렵 텐무천황은 대왕을 신이라고 했다 는 내용뿐이다.
물론 신라 율령은 당나라 영향을 받은 바 크지만 신라에서 시행하는 과정에 신라에 부합하도록 수정 보완한 특성을 갖췄다.일본 다이카 율령을 보면 신라 율령 복사판같은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일본학자들은 한반도 문물을 직접 받아들여 일본문화의 근간을 이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륙의 영향이라면서 초점을 흐려왔는데 여기서는 한술 더 떠서 중국에서 직접 수용한 것으로 기술해 놓았다.
야마가와 출판 21쪽에 하쿠호문화 라는 단원이 있다.
후지와라경을 중심으로 번성한 하쿠호문화는 천황의 권위를 높였고 관리들이 율령국가를 건설하려는 의욕이 넘친 시대의 문화이다.
아스카시대 무렵에 번성한 불교는 국가의 보호를 받아 발전했다.텐무천황은 불교를 극진히 신앙하여 다이칸대사,야쿠시사 등 관립 사찰을 건립했다.(중략,)신사도 국가의 보호를 받았으며 특히 이세신궁(을 중시했다 는 내용이다.
여기에도 신라에서 문화를 전수한 경위는 한마디도 없다.
야마가와 출판 고교생용 43쪽에도 하쿠호문화 단원이 있는데 역시 마찬가지 논지다.
텐무,지토천황 시대에는 율령국가가 형성되는 시대의 움직임을 반영하여 청신한 문화가 일어났다.(중략,)텐무천황은 이세신궁을 비롯하여 신사에 제사 지내기를 중시하였으나 불교도 극진히 신앙했다.(중략,)이 시대에는 당나라와 교섭에 의해 중국문화를 직접 유입하는 길이 열렸으므로 미술에도 당나라 초기 영향을 볼 수 있다.고후쿠사 불두 등 금동상은 그 대표적인 작품이며 인간적이고 매우 젊음이 넘치고 있다 고 기술했다.
여기서도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다카마쓰총고분의 벽화와 담징의 작품인 호류사의 벽화를 인도,중국의 양식을 받아들인 것이라는 내용으로 이어져 있다.
모든 역사 교과서에서 하쿠호문화는 천황의 권위를 높였다 대왕을 신이라고 했다 천황이 이세신궁을 중시했다 는 대목을 하쿠호문화의 핵심처럼 애써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