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는 본업인 음악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때론 적극적으로 사회참여를 하기도 한다. 레게 음악을 상징하는 자메이카 출신의 '밥 말리'도 대표적인 사회참여 가수다. 그는 활동기간 내내 노래를 통해 전세계 흑인들의 단결을 촉구하는데 앞장서왔다.
특히 서로 다른 이념으로 두동간이 난 조국의 단합을 위해 온몸으로 뛰었다. 1978년 4월 22일 자메이카 킹스턴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의 사랑 평화 콘서트 (One Love Peace Concert)'는 밥 말리의 노력이 꽃을 피운 감동의 순간이었다.
당시 자메이카는 마이클 맨리 수상이 이끄는 사회주의 노선의 인민국가당(PNP)과 에드워드 시가를 대표로 한 친미(親美) 노선의 자메이카 노동당(JLP)이 극한 대립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 두 정당은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킹스턴의 갱스터들을 끌어들여 내전에 버금가는 아귀다툼을 벌였다. 밥 말리는 이런 끔찍한 현실에 대해 "정치인들은 보통 사람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자메이카의 내분이 심해지자 두 정당의 무력 단체를 이끌고 있는 버키 마샬과 잭 마솝이 비밀리에 만나 협상을 했다. 이들은 양쪽이 휴전에 동의하고 평화협상을 시작하면 밥 말리가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공연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영국에 머물고 있던 밥 말리는 흔쾌히 수락을 했고 역사적인 평화 콘서트가 열렸다.
자메이카를 대표하는 그룹 열 여섯 팀이 참여했고 3만 2천명의 관중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오후 5시에 시작된 공연은 자정이 넘을 무렵 밥 말리가 등장하자 절정에 달했다. 밥 말리는 히트곡 'Jammin'을 부르던 도중 마이클 맨리 수상과 에드워드 시가 대표에게 무대에 올라와 달라고 청했다.
두 사람이 무대에 오르자 밥 말리는 악수를 하라고 권했고 서로 손을 맞잡자 자메이카가 하나됐음을 선포했다. 이어 콘서트의 제목이자 밥 말리의 평생 꿈이기도 했던 명곡 'One Love'를 불렀다. "하나의 사랑, 하나의 마음 / 이제 단결해서 올바르게 마음을 갖도록 해요 /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의 사랑을 외치는 게 들려요."
콘서트 이후 두 정당간의 반목은 급속히 줄어들었고 평화무드가 도래했다. 밥 말리는 그러나 하나의 사랑이 완벽하게 이뤄지는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1981년 5월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서 마이클 맨리와 에드워드 시가는 또다시 손을 잡았다. 밥 말리의 유산이었다. 팝 칼럼니스트 rocksacrifice@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