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인터뷰 '달려라 광포동'] ⑦ '이승학 돈까스 전문점' 이승학 사장

입력 : 2011-04-22 10:44:00 수정 : 2011-05-02 08: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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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선 내 인생, 광포동과 닮은 꼴"

매일 아침 주방에서 아내와 함께 돈가스 소스를 만들고, 필요할 땐 직접 서빙도 한다는 이승학 사장.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가게가 대대손손 광포동을 지켜가기를 희망했다. 김병집 기자 bjk@

내 이름 석 자를 건 돈가스. 들어는 봤나? 부산 중구 '이승학 돈까스 전문점'. 지난 12년간 돈가스 하나에 모든 걸 걸었어.

덕분에 경매 넘어갔던 집도 찾았고. 남포동, 광복동 일대 상권이 부활한 것처럼 내 인생도 다시 일어섰어.



잘 살아보겠다고 한때 미국 이민도 갔지만, 역시 여기만한 데가 없더라. 그래서 돌아왔어. 화려했던 과거, 침체 뒤의 재기. 내 인생은 광포동 역사와 닮은꼴이야.


어릴 적 뛰놀던 곳
도망치듯 간 미국 이민
돌아와 12년 전 연 가게
역시 여기만한 데가 없어


■ 화려했던 과거

내 나이 예순셋. 고향은 함경남도. 돌 지나서 부산 왔지. 1950~1960년대, 그 때는 남포동 거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인파에 떠밀려서 가던 시절이었지. 광복동 야시장엔 없는 게 없었어.

이 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책가방 메고 왔다 갔다 하던 거리야. 동광'국민'학교에 다녔지. 달라진 것? 주택이 사라졌어. 옛날엔 장사하는 사람들도 다 여기서 살았는데. 가게는 세를 주더라도 주인이 그 위에 집을 짓고 살았지. 골목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고. 사람 사는 거리였지. 자치기도 하고 팽이도 치고 말타기, 술래잡기도 하고. 그러다 심심하면 용두산 올라가서 물총놀이도 하고. 그런데 1970년대 이후로는 다들 외곽 지역으로 이사를 나가더라.

어릴 때 친구들은 다 떠났지.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 중에 남아 있는 녀석이 없으니까. 나 어릴 때 아버지는 '명시당'이라는 시계점을 했어. 부자였겠다고? 그 시절 광복동, 남포동에 살면 다 부자였지. 부잣집 아들들 많았어.

■ 사업 실패

IMF 전부터 이 일대가 침체되기 시작했어. IMF 땐 빈 점포도 늘고 땅값도 많이 떨어졌지. 옛날 시청 쪽으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까.

나랑 집사람은 계속 음식점을 했어. 1983년에 분식점을 개업한 뒤 중국집도 하고 식당도 했지. 집사람이 식당 일에 전념하는 동안 내가 했던 사업이 문제였어. 사업이 잘 될 땐 평생 걱정할 게 없는 줄 알았는데. 다 지난 일이지.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어. 2년 8개월간 미국에 있었지. LA 근교에서 살면서 나는 차 정비를 하고, 집사람은 레스토랑 일을 했어. 미국이란 데가 관광으로 갔을 땐 참 좋은 나라였는데, 살아 보니 장난이 아니더라고. 돌아오길 잘했지. 사실 도망치듯 간 이민이었어.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식집을 차렸어. 장사가 잘 안 돼서 문을 닫았지. 그 뒤에 대출 받아서 하단에서 시작했던 고깃집이 망했어. 집이 넘어갈 처지가 됐지.

■ 그리고 재기

1999년에 결국 다시 '제2의 고향' 남포동으로 돌아와 돈가스 가게를 열었어. 미국에서 레스토랑 일 하며 집사람 박춘희(60) 여사가 배웠던 걸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적용했지. 소스에만 25가지 재료가 들어가. 한동안 매운 맛 열풍일 때는 매운 돈가스를 개발했는데 그것도 히트 쳤지.

사람들은 음식이 손맛이라고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첫 번째는 재료야. 경영 방침은 최고의 재료를 쓰는 거지. 국산 어린 돼지 등심만 써. 집사람과 내가 아침 9시에 출근해 매일 직접 소스를 만들지. 딸은 카운터를 보고 아들은 주방, 홀을 보는 가족 경영 체제야.

단골손님도 많아. 꼬마부터 할아버지 손님까지 다양해. 고등학생 손님이 군인이 돼서 나타났다가 결혼한 뒤엔 애를 데리고 오기도 하고. 요샌 지팡이 짚고 오는 노인 손님들이 많아서 계단 옆에 손잡이를 달았어.

옛날에 사업을 하면서 큰돈을 만질 땐 먹고 살 걱정이 없었어. 하지만 늘 불안한 삶이었지. 지금은 작은 돈가스 가게지만 행복해. 이래 봬도 점심, 저녁에는 손님이 줄을 서니까. 3년 전에 서면에 2호점도 냈고. 이름 걸고 하니까 거기도 장사는 잘 돼.

돈가스 가게 하면서 경매 넘어갔던 집도 찾고 아들, 딸 대학도 보냈어. 음악을 전공한 아들이 기특하게 내 일을 물려받겠다고 하네. 일본처럼 5~6대 이어가는 그런 식당이 되었으면 좋겠어.

조금 있다 집사람과 내가 함께 나온 사진을 가게 벽에 걸고, 아들이 결혼하면 아들, 며느리 사진도 걸고. 광포동 안 떠나고 가업을 받들 녀석이 계속 나와서 대물림 되면 좋겠어. 나는 광포동 2세대로서 여길 안 떠나고 지켰다는 자부심이 있거든.

그런데 혹시 소문 들었어? 이 근처에 15년째 3천 원짜리 동태국을 파는 할매집이 있다던데. 어딘지 나도 한 번 찾아볼까 하거든.

심층기획팀=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영상=김예린 대학생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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