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358> 전남 영광 불갑산

입력 : 2012-06-07 08:02:45 수정 : 2012-06-08 07: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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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산세에 백제 천년고찰…절정의 활엽수로 관능미 더해

하산길에 지나쳐야 하는 암릉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고 수직으로 떨어져 아찔하다. 자칫 발을 헛디디기라도 한다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전남 여수는 엑스포 때문에 시끌벅적하다. 반면 같은 전남이라도 서북쪽 대각선 방면에 위치한 영광군과 함평군은 호젓하기 그지없다. 자고이래로 손님이 없을 때 찾아가면 대접을 받기 마련이다. 이번 주 '산&산'은 영광군과 함평군에 걸쳐 있는 불갑산(佛甲山·516m)을 다녀왔다. 산세도 넉넉하거니와, 백제 천년고찰인 불갑사를 품에 안고 있어 볼거리도 많다.



불갑산은 불갑사가 영광군에 있기 때문에 영광군의 산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불갑산 능선은 함평군의 해보면과 영광군 불갑면, 묘량면 경계를 넘나든다. 불갑산 능선이 두 군의 경계인 셈이다.

언뜻 보기에 불갑산의 산세는 초라해 보인다. 주봉인 연실봉의 높이가 겨우 500m 남짓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갑산은 한때 호랑이가 살 정도로 험곡이었으며, 함평천의 지류인 대동천과 불갑천의 발원지이다. 특히 불갑사 뒤편은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공룡능선이어서 산을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

산행 코스는 불갑사 일주문~수도암 갈림길~수도암~도솔봉~용천봉~용봉 갈림길~구수재~연실봉~노루목~장군봉~투구봉~법성봉~노적봉~호랑이 동굴~덫고개~불갑사~원점 순이다. 총 9㎞ 구간으로 점심을 먹고 취재하는 시간까지 합쳐서 4시간 30분 걸렸다.


불갑사 뒤편 기암괴석 능선
산 타는 재미 '쏠쏠'

절의 위세 너무나 당당
모악산서 불갑산으로 개명

안전한 길 두고 위험한 길 선택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산



출발점은 불갑사 일주문이다. 불갑사는 일주문에서도 15분가량 걸어 들어가야 한다. 이 절은 백제 때 우리 땅으로 건너와 불교를 전파한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창건했다. 이른바 '천년고찰'이다. 천년고찰이라고 하면 신라시대 절만 떠올리던 경상도 사람에게 백제의 고찰은 다른 나라 절 같은 느낌을 준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불법을 들고 법성포에 당도했던 마라난타는 모악산 아래에다 '모든 불사(佛寺)의 시원이요 으뜸(甲)이 된다'는 뜻에서 '불갑(佛甲)'이라 이름 붙인 절을 지었다. 절의 위세가 얼마나 당당했던지 뒤편의 산은 원래 이름인 모악산을 버리고 불갑산이 됐다.

일주문에서 6~7분 평지 길을 걸어 올라 불갑사에 못 미친 지점에서 갈림길이 나온다. 계속 전진하면 불갑사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꺾어 수도암 방면으로 올라간다. 수도암으로 가는 길은 폭 2m가량의 비포장 임도다. 등산보다는 트레킹에 적당할 정도로 경사가 완만해 걷기 좋다. 오른쪽에 계곡을 끼고 몸을 풀듯 올라간다. 계곡에는 큰 암괴들 사이로 빠져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하다. 산 좋고 물 좋다는 말이 딱이다.

갈림길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수도암이다. 수도암은 전각 뒤 단청을 한 산신각만 없다면 절집인지 여염집인지 분간이 안 된다. 하긴, 싯다르타가 수행하던 원시불교 시절, 절집과 여염집의 분간이 있었겠나 싶다.

수도암 왼쪽에는 5~6기의 돌탑이 보인다. 기단부터 꼭대기까지 돌을 하나씩만 쌓아서 2~3m 높이로 올린 독특한 형식의 돌탑이다. 보통 아랫부분이 넓고 위로 갈수록 좁게 만들어 안정감을 주는 다른 돌탑과 다르다. 수도암 살림을 맡은 한 보살은 "기단과 꼭대기의 폭이 비슷해 위태로운 형상이지만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다"고 한다.



돌탑 옆 샘터에서 약수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도솔봉(340m)으로 길을 재촉했다. 수도암에서 도솔봉으로 오르는 길은 이번 코스 중 가장 가파르다. 해발 171m에서 340m까지 20분간 치고 오른다. 아쉽게도 도솔봉에서는 전망이 나오지 않는다. 도솔봉뿐만 아니다. 연실봉에 이르기 전 능선에서 전망을 확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구간에서 '밖을 보는' 풍경은 없지만 산에 들어 '안'을 바라보는 맛도 이에 못지않다. 불갑산은 타원형으로 굽은 능선이 이어지기 때문인지 부드러운 산자락에 가득한 활엽수의 신록이 유독 더 아름답다. 물결처럼 굽이치는 능선은 여름 햇빛을 받아 절정으로 치닫는 활엽수들로 부풀대로 부풀어 관능미를 더한다.

용천봉(355m)을 지나면 해발 238m의 구수재까지는 대부분 내리막이다. 20분 소요. 하지만, 내리막을 타는 즐거움이 그리 크지 않다.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야 하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체력에 문제가 있다면 구수재에서 왼쪽으로 꺾어 1.5㎞만 내려가면 원점인 불갑사다. 단합대회 산행을 나온 여수해양경찰서 소속 직원들은 구수재에서 준비해온 막걸리를 마신 뒤 이 길을 따라 하산했다.

구수재에서 연실봉까지는 다시 오르막이다. 특이한 점은 이 구간에서 그 흔한 소나무를 거의 볼 수 없다. 때죽나무, 산벚나무, 굴참나무, 서어나무 등 활엽수들만 혼재해 숲을 이룬다. 활엽수들이 내뿜는 신선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길을 재촉한다.

10분 정도 오르막을 오르다 등산로 옆에 조성된 신산 신씨 묘를 지난다. 험한 산중에 있어 자손들의 손길이 덜 닿은 듯 봉분이 쥐가 파먹은 것 같다. 살았을 때 신산스러웠던 삶이, 죽어서는 등산길 옆에 묻히는 바람에 평안해 보이지 않았다.

20분가량 전진하다 보면 특이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안전한 길', 오른쪽으로 가면 '위험한 길'이란다. 호승지심이 발동해 위험한 길을 선택해 연실봉으로 향했다. 길은 솟아난 큰 바위들이 틈 사이로 좁고 강퍅하게 나있지만, 그렇게 위험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연실봉 직전에 목재로 만든 계단이 있다. 이름 하여 통천계단, 도리천으로 오르는 계단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통천계단을 통과해 드디어 불갑산의 주봉인 연실봉에 올랐다. 해발 516m. 연실봉은 일망무제의 시야를 선사하지만, 높이가 주는 위압은 없다. 이 정도 높이에서 내려다보이는 전망은 선명한 '입체'다. 마침 재첩국물처럼 뿌옇던 하늘도 맑게 걷히기 시작해 조망의 즐거움을 더했다.



하산은 노루목 갈림길을 지나 장군봉 법성봉 투구봉을 지나 덫고개에서 왼쪽으로 꺾어 불갑사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산&산'은 노루목 갈림길에서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안전한 길', '위험한 길' 이정표가 다시 나타난 것. 좀 전의 잔상이 남아 다시 위험한 길을 선택한다. 위험하면 얼마나 위험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길은 정말 위험했다. 칼끝 같은 공룡능선을 지나는데,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다. 눈을 아래로 두면 천 길 낭떠러지다. 현기증에 머리가 핑 돈다. 난간을 잡고 엉금엄금 기어가다시피 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다.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난간이 설치돼 있긴 하지만, 어지럼까지 없애주지는 못한다. 이 공룡능선을 내려오자 바위 뒤편에 두 개의 비석이 서 있다. 비석은 1987년과 1992년에 산악사고로 두 명이 사망했다고 적고 있다.

장군봉과 투구봉, 법성봉, 노적봉을 차례로 지나쳐 하산하다 보면 호랑이 동굴을 만난다. 직각으로 떨어지는 병풍바위를 파고 든 자연동굴인데 깊이가 2m 정도다. 실제, 호랑이가 살았던 굴이라고 한다. 이 호랑이는 1908년 불갑산 산중에서 농부가 놓은 덫에 걸려 잡혔다. 잡힌 호랑이는 일본인에게 논 50마지기 값인 200원에 팔려 박제로 만들어져 목포의 유달초등학교에 기증돼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남한지역에서 잡힌 호랑이의 유일한 박제 표본이다.

호랑이 동굴에서 10분을 더 내려오면 덫고개를 지난다. 여기서 왼쪽으로 꺾어 20분가량 더 내려오면 불갑사다.

산행문의 :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산행대장 010-3740-9323.

글·사진=박진국 기자 gook72@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전남 영광 불갑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전남 영광 불갑산 구글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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