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장미' 김장미는 성격이 적극적이고 쾌활하다. 사격을 시작한 이유부터가 그렇다. 초등학교 때 경호원이 되는 게 꿈이었던 그는 목표를 이루려면 사격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격을 시작했다.
인천 예일고 출신인 김장미는 고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전국 최강이었다. 고2 때는 제1회 아시아청소년대회와 제1회 유스올림픽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하향세를 긋더니 고3 때에도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다. 개인적인 문제로 사격을 포기하다시피하고 게임장에서만 살며 방황했기 때문이었다.
부산서 제2 사격 인생
4월 세계新 '일취월장'
그가 되살아난 것은 고교를 졸업한 뒤 부산에 오면서부터다. 부산시청 서성동 감독의 설득에 한국체대로 가려던 마음을 바꾸고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김장미는 부산 영도사격장, 부산체고 등에서 중·고교생들과 함께 훈련했다. 밝은 성격 덕분에 타향에서도 사격 후배들과 곧잘 어울렸다고 한다. 이런 성격이 사격에도 큰 도움이 됐다. 여기에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적극성이 그의 장점이다. 서 감독은 "말로는 장미를 당해내기가 힘들다"며 웃었다.
김장미가 완벽하게 회복한 것은 지난해 10월 전국체육대회 10m 공기권총 개인전에서 우승하면서부터다. 그 대회를 마치고 한 달 뒤 생애 처음 국가대표가 됐다. 기량이 일취월장한 그는 지난 1월 아시아선수권대회 10m 공기권총에서 우승하더니 4월에는 영국 런던에서 프레올림픽 대회로 열린 사격 월드컵에서 25m 권총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정상에 섰다. 귀국 후 광고 출연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어린 선수가 흔들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사격 대표팀 변경수 감독의 제재로 외부 접촉을 차단당했다.
이제 앞으로 문제는 김장미가 내년에도 부산시청 선수로 활약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올림픽에서 맹활약하며 여자사격 간판으로 떠오른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여러 시·도에서 접촉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봉도 억대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남태우 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