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현대사 원폭의 진실] 일본 원폭 2세 민간 조사 "방사선 피폭 백혈병 유전"

입력 : 2012-08-14 11:00:01 수정 : 2012-08-14 14: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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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에 의한 방사선 피폭이 후손에게 유전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일본에서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연구는 동물이 아닌 피폭자를 대상으로 한 민간 차원의 첫 조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1945년 8월 원폭 이후 방사선 피폭의 유전성을 줄곧 부인해 온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1만 명으로 추정되는 원폭 2세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와 함께 지원책 마련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35세 전 발병 49명 중
부모 양쪽 피폭 26명이나
첫 연구 조사 결과
일 정부 공식 입장과
정면배치 주목
국내 1만 명 지원 시급


가마다 나나오(鎌田七男) 히로시마대학 명예교수를 주축으로 한 일본 연구진은 최근 '히로시마 원폭 피폭자 자녀의 백혈병 발생에 관하여'란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통해 원폭 2세의 백혈병 유전 가능성을 제기했다.

연구진은 1946~1955년 사이에 태어난 원폭 2세 중에서 35세가 되기 전에 백혈병에 걸린 49명을 분석한 결과, 부모 양쪽 모두가 피폭된 자녀가 26명인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아버지만 피폭된 경우(6명)와 어머니만 피폭된 경우(17명)보다 훨씬 많은 숫자로, 방사선 피폭에 따른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연구진의 판단이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일본 방사선영향학회에 보고됐다.

가마다 명예교수는 "양친 모두 피폭을 당한 경우가 부모 중 어느 한 쪽이 피폭된 경우보다 발병 비율에서 의미 있게 높은 수치가 나왔다"면서 "이를 토대로 신중한 역학적 해석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그동안 노무라 다이세이(野村大城) 오사카대학 명예교수가 40년에 걸친 쥐 실험을 통해 방사선 피폭의 유전적 영향을 강력히 주장해 왔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에서 원폭 피해자에 대한 연구는 방사선영향연구소(RERF)가 독점적으로 수행해 왔으며, 민간 차원의 연구는 생명윤리와 개인정보 등을 이유로 엄격히 규제해 왔다.

국내에 있는 원폭 2세에 대한 정확한 현황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단 한번도 정부 차원에서 실태조사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원폭2세인 김형률(1970~2005) 씨의 진정에 따라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편설문조사가 사실상 전부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원폭1세 지원업무를 맡고 있는 대한적십자사도 원폭2세는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

원폭2세 지원단체인 '합천평화의 집'은 국내 원폭 2세를 1만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원폭2세환우회(회장 한정순)에는 1천300여 명이 등록돼 있다. 국내 원폭1세는 90% 이상 사망한 상태며, 원폭피해자협회에 등록된 원폭 1세는 지난 6월 기준으로 2천663명(합천 626, 부산 710명)이다. 김기진 기자 kkj99@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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