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옥의 시네마 패션 스토리] 62. 브레이브 하트

입력 : 2014-09-26 09:52:06 수정 : 2014-09-29 14: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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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자무늬 킬트로 스코틀랜드 민족 정체성 드러내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윌리엄 월레스(멜 깁슨 분).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듯한 타탄 체크 무늬의 킬트 복장이 눈에 띈다. 진경옥 제공

민족 정체성은 대중문화와 관련이 깊다. 영화의 파급력은 그중에서도 으뜸에 속한다. 멜 깁슨 감독 및 주연의 1995년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스코틀랜드인의 정체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화는 13세기 잉글랜드 왕의 착취와 억압에 맞서 싸운 스코틀랜드 민족 영웅, 윌리엄 월레스(멜 깁슨 분)의 실화를 담은 할리우드 사극이다.

스코틀랜드 정치인들은 스코틀랜드 독립 투쟁사를 다룬 이 할리우드 영화를 잘 이용했고, 그 결과 1707년 '영국'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된 스코틀랜드는 지난 9월 18일, 무려 307년 만에 독립 여부를 결정하는 기회를 가졌다. 비록 경제적인 실리를 좇아 독립의 꿈은 무산됐지만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스코틀랜드는 막대한 자치권을 회복하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1996년 제68회 아카데미상에서 베스트 픽처, 감독, 촬영, 특수효과, 분장 등 5개 부문을 휩쓸었다. 특히 찰스 노드가 의상감독을 맡은 의상디자인은 같은 해 영국 아카데미에서 베스트 의상상을 받았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의상과 분장은 단연 멜 깁슨의 타탄체크(스코틀랜드의 고지방에서 발달한 격자무늬)로 만들어진 킬트(kilt·스코틀랜드의 남자가 전통적으로 착용한 치마형 하의)와 얼굴에 칠한 파란 페인트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의상상을 받은 이 옷과 분장이 고증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찰스 노드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고증을 통한 역사적 정확성 대신 영화의 감동과 극적 효과를 선택해 성공했다. 킬트가 스코틀랜드인의 의상이라고 믿는 보통 사람들의 선입견에 편승한 결과다.

격자무늬의 킬트가 스코틀랜드인의 전통 의상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이 스타일은 18세기 이후 나타났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13세기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스코틀랜드의 당시 전통 의상은 커다란 타탄으로 몸을 감싼 것이라고 한다. 영화에서 선보인 타탄체크의 킬트는 18세기 산업혁명 후 활동성을 위해 공장 노동자들이 개조했다.

얼굴의 푸른 페인트도 마찬가지다. 이 페인트 칠은 1세기께 스코틀랜드에 살던 토착민의 스타일이다. 참고로 지금의 스코틀랜드인은 6∼7세기에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이주한 사람들이란다.

멜 깁슨의 헤어 스타일과 스코틀랜드 전사들의 타투도 고증된 것이 아니다. 깁슨의 헤어 스타일은 20세기 후반의 바이커 스타일에서 차용했고, 타투는 영국과 미국 스포츠팬들의 모습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귀족과 농민 의상은 고증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13세기 중세 스코틀랜드 여성은 발목 길이, 남성은 무릎 길이의 길고 넉넉한 셔츠의 튜닉(무릎 정도로 장식이 거의 없는 느슨한 의복)을 입었던 것이다. 남녀 모두 겉 튜닉 안에 속 튜닉을 입었는데, 겉옷보다 속옷이 조금 길어서 치맛단이나 소매 위로 삐져나온 것도 잘 고증됐다.

이 시기 여성 귀족은 발목 길이의 긴 소매 원피스 위에 코트아르디(중세시대의 몸에 꼭 끼는 소매가 긴 겉옷)를 입고 허리 아래에 벨트를 매서 허리를 날씬하게 보이도록 했다. 목 가리개인 고제트와 머리싸개인 윔플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세벨 공주(소피 마르소 분)의 윔플과 베일, 그리고 땅에 질질 끌릴 정도로 긴 소매, 몸에 딱 붙는 드레스는 당시 의상을 공부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kojin1231@naver.com 


진경옥

동명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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