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 효과'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2001년 아카데미상에서 12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의상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0년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생긴 말이다. 영화는 미국에서 고대 로마 붐을 일으켜 로마 정치가인 키케로의 정치서적과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이례적인 매출을 기록하고 할리우드 역사 영화에도 큰 영향을 미쳐 '트로이' '알렉산더' '킹 아더' '300'과 같은 영화가 쏟아져 나오게 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검투사를 뜻하는 말)는 서기 180년부터 12년간 재위하면서 제국의 쇠퇴를 가져온 로마의 폭군, 코모두스 황제의 잔혹한 취향을 모티브로 해서 주인공 막시무스(러셀 크로 분)가 장군에서 글래디에이터로 전락한 인생 역정을 그렸다.
영화는 거대한 스케일로 블록버스터의 신세계를 열었지만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도 함께 받았다. 예를 들어 막시무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휘하에서 기병대를 이끌고 게르만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인물인데, 그의 영웅적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실과는 다르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즉,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영화에서 암살을 당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병으로 죽었고, 코모두스 황제(호아킨 피닉스 분)도 영화에서는 막시무스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역사에서는 폭정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암살을 당한 것이다.
잔티 예이츠 의상 팀은 엑스트라 의상까지 합해서 1만 벌 이상을 만들었다. 로마시대 의상을 재현하기 위해 수천 권의 역사서를 보고 수십 차례 박물관을 방문한 결과였다고 한다. 그는 고전미를 추구한 19세기 화가 로렌스 앨마 태디마와 17세기 화가 조르주 드 라투르 그림의 텍스처와 섬세한 디테일 기법을 토대로 의상을 제작했다.
영화에는 궁중 사람부터 노예까지 다양한 계층의 복식이 나온다. 그중 막시무스는 로마 장군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 주는 갑옷을 갖춰 눈길을 끌었다. 그는 그 시대에 귀하게 여겨지던 자색의 반팔 투니카(무릎 길이로 두 장의 천을 맞대어 목이 나올 곳만 남기고 옆 솔과 어깨 솔을 꿰맨 옷)를 속에 입고 그 위에 철제 갑옷인 '로리카'를 입었다. 갑옷 위에는 붉은색 '팔루다멘툼'(폭이 넓은 직사각형이나 반원형의 천을 어깨에 둘러 갑옷 위에 걸치는 옷)을 장식핀인 '피블라'로 양 어깨에 고정시켰다. 갑옷 색상은 공격적인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일부러 땅과 안정성, 힘을 상징하는 갈색 톤을 썼다. 그리고 노예가 되자 원시적인 투니카로 갈아입었다.
영화에서 가장 화려한 의상을 입은 이는 역시 루실라 공주(코니 닐슨 분)였다. 로마 여성의 기본 복식은 속옷으로 투니카를 입고 그 위에 '스톨라'(그리스의 키톤과 같은 발목 길이의 의복)와 '팔라'(원피스 길이의 3배가 되는 직사각형의 대형 숄로 연출한 여성 겉옷)를 걸치는 것이었는데, 공주는 기본 복식의 틀을 지키되 디자인과 색상을 달리해 화려함을 뽐냈다. 공주의 팔라는 베일 역할을 하기도 했다.
코모두스 황제의 옷은 문양이 매우 크고 색상은 자색이나 푸른색, 보라색 등 당시 귀하게 여겨지는 색상이 대부분이다. 특히 그의 갑옷은 고무로 만든 의상에 겉만 가죽을 씌워 거동을 편하게 했다. 그가 콜로세움에서 입은 의상은 대리석처럼 보이는 흰색 갑옷으로 다른 글래디에이터들과 대조를 보이기도 했다.
kojin1231@naver.com
진경옥
동명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