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사진으로 읽는 역사] 44. '대창정 거리'

입력 : 2015-11-03 20:00:30 수정 : 2015-11-05 15: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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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은 문명의 이기? 일제 땐 지배의 무기!

근대 도시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인 전철은 일제 강점기 서울 평양 부산에만 건설되었던 문명의 이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에 건설된 전철은 단순히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화 논리인 '문명화의 사명'으로 건설된 문명의 이기라 하기는 힘들다. 문명화의 열매는 철저히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부산의 전철은 일제 강점기 부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식민지 이전부터 논의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부산을 근대적인 도시로 만들고 이를 향유하기 위해 본국의 자본을 끌어들여 도시기반시설을 설치할 조선가스전기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조선가스전기주식회사는 근대 도시의 핵심적 기반시설인 가스와 전기는 물론 교통수단인 전철까지 시설하고 경영할 수 있는 독점기업이었다. 이 회사는 일본인이 사용할 수 있는 가스와 전기 시설을 일본인 중심시가에 설치했다. 동시에 기존의 부산진에서 동래온천장간 경편철도를 인수하여 전철로 개편하는 한편, 일본인 중심의 '부산시가'를 일주하는 시내노선과 동래온천장까지 연장하는 시외노선을 완성했다.

이 사진은 이 회사가 설치하여 경영하고 있던 전기와 전철을 확인할 수 있는 '대창정 거리'의 모습이다. 지금의 중구 중앙동 해관로에 해당하는 이 거리는 원래 바다였지만 오쿠라(大倉喜八郞)라는 정상(政商)의 부산매축회사에 의해 매축되어 동네 이름까지 그의 이름이 붙여진 곳이었다. 이후 현재의 용두산 공원을 중심으로 하는 당시 일본인 중심시가의 한 지선이었는데, 이곳에 1916년 대청정선(현 대청로)과 함께 전철 노선이 제일 먼저 설치되었다. 그리고 1934년까지 시가일주선의 한 노선으로 운행되다가 영도대교와 지금의 중앙대로의 설치로 노선이 옮겨가면서 폐지되었다.

이 사진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전차가 가운데가 아니라 한 쪽으로 붙어 운행되고 있는 점이다. 이는 전철의 설치를 인가하는 조선총독부의 논리가 반영된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국방상 이유를 들어 전철 인가의 조건으로 편측 설치를 지시했다. 즉, 조선인들의 저항이 발생하면 진압을 위해 군대를 출병할 때 전철이 이를 막으면 안 된다는 논리였다. 결국, 일제 강점기 전철은 조선 거주 일본인을 위한 '문명의 이기'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인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한 식민 지배의 무기였다.

전성현

동아대 석당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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