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무성이 매년 발행하는 '외교청서'의 2016년판이 지난달 15일 일본 각의에서 배포됐다. 전문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해와 올해 3월초까지의 국제정세와 주변국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2016년판 외교청서에서는 올해 1월 중의원 시정방침연설에서 아베 총리가 사용한 "(한국은)전략적인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표현이 반복됐다. 이것은 지난해 11월 초 처음으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데 이어 그해 12월 28일의 외교장관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로 '일한관계는 크게 전진'했다는 일본 측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위안부 합의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본 정부가 옛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해 한국 측이 요구했던 `법적 책임'이나 일본 측이 고집해온 `도의적인 책임'이라는 말 대신 애매모호한 '책임을 통감'해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점이다.
이것은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 시점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채 1910년의 강제병합조약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임을 확인했던 것처럼 매우 자의적인 표현이다.
다른 하나는 1990년대 중반 일본 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취해졌던 `아시아여성기금'(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과 달리 이번 합의에 따라 만들어지는 재단이 한일 양국 정부의 공동 책임 하에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과 치유를 위한 사업을 실시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위안부 합의 전후 일본 언론이 쏟아내는 말들이 여과 없이 국내에 전해지면서 국민들의 생각이나 정서에 반하는 합의를 했다는 비판이 우리 정부에 집중되었고 다음과 같은 오해도 초래됐다.
첫째,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의 이전에 우리 정부가 동의했다.
둘째,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 엔의 자금을 거출하는 것은 소녀상의 이전이 전제다.
셋째, 일본 정부가 재단에 10억 엔을 거출하면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본다는 점에 우리 정부가 동의했다.
넷째, 합의 이후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다.
소녀상 이전에 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을 뿐이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라는 것은 모든 전(前) 위안부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이며, 구체적으로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목적으로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10억 엔의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일한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전(前)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가리킨다.
재단은 한국 정부에 의해 설립되지만 양국 정부는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에 대해 협의하고 결정해야 하며, 사업도 양국 정부의 공동 책임 하에 실시된다. 재단의 설립에서 운영, 해산에 이르는 구체적인 사항은 양국 정부가 협의해 결정해야 한다.
또한 양국이 합의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소모적인 상호 비난과 비판을 하지 말자는 것뿐이었다. 일본이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하려고 한 것은 시민단체의 반대로 한국 정부가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지만,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표명해온 입장에 반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먼저다.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경위를 고려하면 합의에는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 따른다. 국가 간 합의는 상호구속적이지만 합의를 파기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어렵게 이룬 합의를 파기하고 다시 협의해 재합의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그만큼 정치적 부담도 크다.
양국 국민과 국제사회가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고 양국 정부를 협상 테이블에 나서게 한 데에는 한일 양국 학자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같은 시민단체들의 역할이 컸다.
우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42명뿐이다. 시간이 없다. 내달 설립될 것으로 알려진 `화해·치유재단'(가칭)의 성공을 위해 지금은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지혜를 모으고 협력해야 할 때다.
조진구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연구교수(도쿄대학 법학박사, 국제정치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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