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최태원 회장의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모처럼 공개 석상에 나서 요즘 전공처럼 설파하고 있는 로봇 이야기를 들려줘 관심을 끌었다.
무대는 한국국가정보학회(회장 동국대 한희원 법과대학장)가 지난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 소노펠리체에서 개최한 제4회 정보포럼. 이곳에서 그녀는 `국가정보와 인문학의 만남 - 나의 로봇 이야기'란 제목으로 특강을 펼쳤다.
지난 2007년에 창립된 학회 회원들은 대학 교수들과 함께 군·경찰·검찰·국정원 등 정보공동체 출신이 상당수를 차지해 행사 분위기가 다소 딱딱해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남편인 최태원 회장이 노 관장과의 이혼 의사를 밝히고 내연녀와 혼외자를 공개하면서 구설에 오른 지 6개월째를 맞고 있다.
하지만 노 관장은 이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로봇 이야기를 화두로 꺼낸 뒤 동서양의 학문적 담론을 섞어가며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펼쳐냈다. 그의 강연은 자연스레 '국가정보와 인문학의 만남'을 유도하면서 은연 중 자신의 속내도 풀어냈는데 현장 속으로 들어가봤다.
■ 이웃집 아줌마가 들려주는 '특별한 로봇 이야기'
이렇게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인줄 모르고, 너무나 소소한 얘기를 준비했어요. 편안하게 이웃집 어떤 아줌마의 얘기라고 생각하시며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최근 로봇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다른 로봇을 만들고 있어요. 로봇과 국가정보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잠시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너른 풀밭에 빈 벤치가 쓸쓸하게 놓여있는) 이 사진을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제가 바로 저런 상태, 아무도 없는 것 같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한 기분, 이런 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저보다 연배가 높거나 비슷해 보입니다. 대부분의 중년들은 남녀 불문하고 이러한 감상에 빠지게되는 어떤 모멘트가 있었을 것입니다.
왜 로봇을 만드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 앞서 '렝가빠빠'라는 강아지 이야기를 먼저 드려야겠어요. 이놈이 제 인생에 출현했습니다. 지인이 결혼을 하게 됐는데 배우자 될 사람이 강아지를 싫어한다며 기르던 강아지를 제게 떠넘긴 겁니다.
저도 개를 길러본지가 너무 오래되서 어떻게 해줄 지 막막했습니다. 이 강아지는 주인에게 버림받았던 충격이 심했는지, 내 곁에서 1m이상 떨어지려 하지 않았죠. 하루종일 새 주인인 내곁에서 한시도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고, 내가 잘때나 요리를 할때나 책을 보거나 샤워를 할때나 하루종일 24시간 내내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빈 벤치 같은 상태에서 렝가라는 새 동료가 생긴 것인데, 그러던 어느날 렝가와 춤추고 노래부르며 펄쩍 뛰기도 하고 동심으로 돌아가서 시도 짓는 등 이전에는 절대 하지 않던 일들을 하며 즐거워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빈 벤치의 문제가 중년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을 알았어요. 남녀 불문하고 대부분의 중년이 빈 벤치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고, 어떻게 치유해야 할 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되고 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아지를 기르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는 매년 애완견 시장이 급성장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죠. 미국도 마찬가지였어요. 경제 상황과 무관하게 애완견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잖아요.
또 하나 '그녀(Her)'라는 영화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컴퓨터와 사랑에 빠진 이혼남 이야기인데 주인공은 컴퓨터 O/S 사만타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한다고 느끼며 사랑에 빠집니다. 영화 말미에 사만타는 주인공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이별을 통보하죠. 주인공이 "사만타, 어디가?"라고 묻는데 그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나 업그레이드 하러가. 이번 버전은 여기서 끝이야"라고 대답하죠.
영화 끝자락에 씁쓸한 사실이 하나 더 밝혀집니다. 주인공처럼 사만타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최고의 연인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무려 3천여 명이라는 사실이죠.
위 두가지 이야기가 제가 로봇을 개발하기 시작한 계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동반자 로봇(companion robot) 혹은 강아지 같은 반려 로봇을 만들자라고 결심하고 지금까지 20개 이상을 만들었고 계속 개발중입니다.
로봇에 대해 얘기해 보면 우리는 현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로봇에 둘러쌓여 살고 있어요. 대부분 인간과 전혀 소통하지 않고 각자 작동하는 것들이죠. 저는 어떻게 인간과 소통이 가능한 로봇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빌게이츠 같은 사람들도 "결국 인공지능(AI)이 결국 인류를 피폐하게 할 것이라고 걱정하죠. 서양사람들은 대부분 `인간 대 로봇'의 대결구도로 봅니다. AI가 모든 것을 다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뭘하고 살아야 하나? 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죠.
■ 인공지능이 판치면 사람은 뭐하고 사나?
오늘 저는 이런 걱정을 덜어드리려 왔어요. 제 결론은 '걱정 안해도 된다' 입니다.
1차, 2차 산업혁명은 기계가 인간의 손과 발 즉, 근육을 대신하게 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에 의해 만들어진 중장비나 자동차를 우리가 두려워 하지는 않죠.
3차 4차 혁명은 정보화와 AI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이는 컴퓨터가 우리 두뇌를 대체하는 것이고, 결국 계산하는 것을 로봇이 인간보다 잘하게 된다는 얘기죠. 이걸 우리가 왜 두려워해야 하나요.
계산이 모든 것일까요. 과거 산업화 시절의 뛰어난 경영자(CEO)는 계산을 잘하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면 현재 또한 미래의 CEO의 덕목은 무엇일까요. 정보조직의 장과 리더들은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 인간의 감정을 잘 낚는 사람이죠.
향후 시장분석 주식투자 등은 AI가 인간보다 더 좋은 솔루션을 장착하고 인간보다 더 잘할 것입니다. 그러나 향후 뛰어난 리더는 시장을 잘 분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따뜻한 사람, 사람 간의 복잡한 관계를 잘 해결하는 인간일 것입니다. 즉 감정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 중요한 덕목입니다.
3차, 4차 혁명으로 기계가 인간의 두뇌보다 더 똑똑해 지고 계산을 잘하게 되는 시대가 되면 사람과 사람간 감정의 문제를 잘 해결하는 인간, 즉 감정을 잘 받아들이고 알아차리고 표현하고 소통하는데 특별한 능력이 있는 분들, 그런 분들이 역할을 많이 하는 시대가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양에선 감정 배제하고 이성만 연구
경제학도 금융위기 이후 수리경제학에서 감정이나 행동경제학 즉, 합리적 판단 보다는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을 전제로한 모델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감정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어요. 왜 일까요. 희대의 독재자들은 음악·스펙터클 등 대중의 감정조작에 능하죠. 그런데 현재까지도 감정에 대한 연구는 별로 없죠.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는데 그런데 왜 연구를 안하는 걸까요.
원인은 서양 근대 학문체계 수립과정에서 감정을 배제했기 때문입니다. 신과 감정에 의해 고통받아온 서양학자들이 근대 이후 모든 학문 분야에서 신을 쫓아내고 감정이나 감성을 완벽하게 배제하고 공적인 영역에서는 이성만 연구한 결과죠.
신과 감정을 논하는 학자는 덜되먹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전통이 확립되었습니다. 인간을 연구하는 철학의 영역에서도 감정은 배제하고 합리적 영역만 다루었죠. 이것이 칸트 이후의 전통입니다.
하지만 동양은 다릅니다. 저는 어릴 때 '저게 인간이야?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가?' 이런 말들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동양의 전통은 사람의 감정, 하늘의 뜻 등을 의식하며 인간답게 행동하는 감정을 중요시 해왔죠.
그런데 급속한 서구화가 진행되면서 이런 영역은 사적인 혹은 밤의 영역으로 밀려났죠. 여러분들도 오늘 이런 상태로 집에 가시면 꿀꿀 하겠죠. 넥타이 풀고 서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벽을 허물고 간격을 없애고 가시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계산은 기계가 인간보다 더 잘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신경쓰고 연구해야 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고, 학교에서도 감정을 가르쳐야 합니다. 음악과 미술 등을 통해 내 감정을 알고 자신을 알아가는 것을 교육해야 합니다.
■ '죽어도 내 사랑 지속해'란 말처럼 인간의 감정은 무한
로봇분야도 이런 감정적인 영역을 가미하려 노력중이죠. 미국 MIT 미디어랩에서 개발한 JIBO(인공지능을 갖춘 세계 최초의 소셜 홈 로봇)의 출시가 임박했습니다. 여타 비슷한 로봇들이 개발 중이지만 인간과의 소통은 아직 초보 단계입니다.
IBM은 왓슨(Watson)에 Emotion Analisys이란 엔진을 탑재해 인간감정의 분석을 시도했죠. 일단 인간 감정을 분노(anger), 혐오(disgust), 공포(fear), 기쁨(joy), 슬픔(sadness) 등 5가지로 분류한 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넣었더니 왓슨은 혐오를 느낀다고 답합니다
결과가 이상해서 마틴 루터 킹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을 넣었더니 분노(anger)와 혐오(disgust)가 나왔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AI도 컴퓨터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래밍의 알고리즘은 유한성이 전제가 될 때 가능하죠. 그런데 감정은 유한하지 않고 무한에 가깝기 때문에 프로그래밍될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번 사랑은 몇 년이 갈 것 같다. 이 슬픔은 6개월 후면 잊혀질 것이다'. 즉, 사랑이나 슬픔이 언제 끝난다는 것을 알아도 과연 그런 감정이 느껴질까요. 다시 말해 사랑이란 영원하고,죽어도 내 사랑은 지속될 것이다. 죽어도 좋아, 죽어도 못잊어, 죽어도 사랑해처럼 사랑 기쁨 슬픔 같은 감정들은 영원성,무한성을 전제로 할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이란 거죠
■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 인간 감정을 상세 분석
서양에서 감정을 연구한 학자들 중 뜻밖에도 아담 스미스가 있습니다. 냉철한 자본주의 경제학자로 알려진 그 분은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의 감정들을 아주 상세하게 분석했죠. 우리 머리 속에는 공평한 관객이 있어서 자신의 모든 감정들을 관찰하며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데 그것이 바로 '양심'이다.
이 분은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 묘비명에도 `자본론'이 아니라 `도덕감정론'의 저자라고 새기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는 기자적 근성을 발휘해 그 분의 묘지를 직접 찾아가 확인해 봤는데 정말이더군요.
그런데 새로 설치된 상석에는 'Champion of private property' 라고 당신이 벌떡 일어날 글을 아담스미스협회에서 새겨놨더군요.
또한 이황 선생은 감정에 대해 무시하지 말라고 했죠. 그리고 그것들의 상위 감정인 의(義) 즉, 이성으로서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아니라, 이성과 감정이 합해진 상위 감정으로서의 인의예지신에 잘 복속시켜야 한다고 말했고요.
칠정(七情)에 의해 일어나는 감정들을 인의예지신에 잘 복속시켜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죠. 여기서도 자기 감정을 잘아는 것이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는 핵심이란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이죠.
■ 아트나비 센터,부부간 소통이나 19금 로봇도 개발중
현재 아트센터 나비에선 부부간 소통용 로봇, 욕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욕쟁이 할머니 로봇, 인공 신경망 송충이 로봇 등을 개발중이에요. 그리고 작년 말에는 로봇 파티를 했어요. 약 70개 로봇들로 밴드도 만들었고요.
제일 인기 있었던 로봇이 폭탄주 제조 로봇, 술마셔 주는 로봇, 19금(禁) 로봇(사람이 말을 걸면 성추행적 말을 하는 로봇)입니다. 사람이 로봇에게 성희롱을 당하면 느낌이 어떨까 해서 만들어 봤습니다.
그리고 보다 소통하는 느낌을 강하게 하기 위해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눈을 쫓아가는 기능을 넣으려 했는데 구글이 그걸 특허를 내는 바람에 하지 못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계산은 기계에게 맡기고 감정을 연구하고, 감정도 성장에 따라 발전 시킬 수 있도록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고. 그래서 인간이 인간성을 만끽하며 살아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서양과 동양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면서 생각하게된 것인데 우리가 서양으로 부터 맹목적으로 배울점도 많았지만,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분야는 따라갈 필요가 없다고 본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일입니다.서양의 중요한 과일인 사과는 처음부터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유명한 그리스 전쟁의 원인이된 파리스의 사과, 앨런 튜링의 사과,백설공주의 사과 등 모두 죽음과 관련된 사과이며 유혹·배신·죽음을 연상시키죠.
그러나 동양의 과일은 반대죠. 생명의 과일이 뭘까요. 복숭아죠. 이걸 먹으면 영원히 살아요. 3천년을 살고 불로장생하죠. 생명과일로 임신할 때 복숭아 꿈은 딸의 길몽이죠. 여자·생명·영원불사 등 이런 것을 연상시키는 과일인 거예요.
이어령 선생님의 가르침인서양의 사과는 죽음이지만 동양은 생명이죠.
■ 인간의 내재된 유일한 감정은 '기쁨'
이제 'From Artficial Intelligence to Artificial Wisdom'(인공지능에서 인공지혜)의 시대입니다.
위즈덤으로 가기위해선 사랑이 필요하죠. 감정에 주목한 서양 학자중 한분인 스피노자는 감정을 48가지로 분류하고 진정한 감정, 즉 무엇 때문에 유발되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일어나는 본연의 감정은 딱 하나 밖에 없다고 했어요. 무엇일까요. 바로 기쁨입니다. 유일하게 인간에게 내재된 감정은 기쁨이랍니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톡특한 철학 때문에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추방당했죠. 추방은 죽음과 같은 의미였고요. 그는 그래서 가장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도시인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죠. 당시 명성이 자자했으나 지적인 자유를 위해 대학의 초청 등을 거절하고,평생 안경렌즈을 깎으며 살다가 유리섬유가 폐에 들어가 40대 초반에 사망했죠. 아주 고독하고 불행한 삶이었죠.
그 분의 저서 '에티카'를 읽었는데 거의 은혜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책을 덮고 울었어요. 에베레스트산을 등정한 기분이랄까요. 그 분은 개인적 삶도 힘들었지만 사회적 분위기도 전혀 기쁨을 느낄수 없는 분위기였죠.
당시 동네 광장에서 정치적 사건으로 사람을 죽이는데 참수가 아닌 매달아 놓고 그의 살을 떠서 집으로 가져가 구워먹는,정말 끔찍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책을 썼는지 놀라웠습니다.
지금 우리는 '인텔리젼스'에서 '위즈덤'으로 가고 있습니다. 위즈덤은 생명입니다.AI 시대를 맞아 프랑켄슈타인 컴플렉스에 빠져 두려움을 느끼는 서양과 달리, 저는 AI와 로봇들을 규율하면서 좀더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이것들을 잘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 이 자리에 나와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홍규 기자 4067park@
사진=국가정보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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