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40년간 논란이 지속된 영국 'A6사건'의 진범은?

입력 : 2016-06-26 11:3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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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40여년간 뜨거운 논쟁거리였던 'A6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공개됐다.
 
26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1962년 A6 거리에서 발생한 강도 사건이 그려졌다.
 
당시 차를 타고 가다가 강도에 습격 당한 마이클 그렉스텐과 발레리 스토리는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연인이었다. 강도에 습격 당한 두 사람은 총에 맞아 쓰러졌고, 다음날 마을 주민에게 발견돼 곧바로 병원에 후송됐다.
 
하지만 마이클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다섯 발의 총을 맞은 발레리는 하반신이 마비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경찰은 범행 장소의 이름을 따 'A6사건'이라 명명,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얼마 후 범인이 타고 간 피해자의 차량과 범행에 사용된 총기, 탄피가 연이어 발견됐다.
 
유일한 목격자 발레리를 불러 범인 식별 절차를 거쳤다. 용의자들에게 발레리가 들었던 말을 해보라고 주문했고, 그 중에는 발레리가 범인이라고 지목한 사람이 있었다.
 
발레리가 범인이라고 지목한 사람은 25세의 제임스 핸래티였다. 그는 범행에 쓰인 탄피가 발견된 비엔나 호텔에서 숙박했지만 경찰은 주요 용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레리는 범인의 눈빛과 런던 토박이 특유의 말투를 기억, 그가 범인이라고 단언했다.
 
제임스는 억울해했지만 유일한 목격자인 발레리의 증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62년 3월 제임스는 사형을 선고 받았고, 6주 만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제임스가 죽고 난 뒤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 중에는 저명한 저널리스트 폴 풋, 반전운동가이자 정치가인 페너 브록웨이와 조안 레스터 등이 포함돼 있었다. 심지어 전문 변호인단인 A6 변호인단도 구성됐다.
 
이들은 제임스가 피해자들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나 살인 동기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네 건의 전과가 있었지만 모두 차량 절도, 주거 침입 등이었기에 살인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밝혔다. 또 어떤 증거품에서도 제임스의 지문이 발견됮 않았다면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증언만으로 유죄를 받았다고 했다.
 
이들은 수사 과정의 문제점도 집었다. 당시 재파과정에서 제임스가 피해자의 차량을 운전하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 증언이 있었는데, 변호인단의 조사 결과 이는 조작된 것이었다고.
 
결국 논란이 계속되자 영국 사법부는 1997년 해당 사건 재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당행히 DNA 검사 기법이 갓 도입된 시점이었고, 경찰은 범행 당시 총을 감쌌던 수건과 발레리 속옷에서 나온 DNA를 검출해 사망한 제임스 대신 남은 가족 DNA와 대조했다. 그 결과 두 DNA는 완벽히 일치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제임스 본인의 DNA가 아니므로 검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2001년에는 제임스의 무덤을 파내 DNA를 대조했다. 그 결과 두 DNA는 100% 일치했다. 결국 40년 동안 영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A6사건'은 제임스가 진범으로 확인되면서 종결됐다.
 
사진=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방송 캡처
 
유은영 기자 ey201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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