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와 미국이 터키 측이 쿠데타 기도 배후로 지목한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의 송환 문제를 둘러싸고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터키와 미국의 갈등이 고조될 경우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이 잠정 중단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또 IS의 테러와 내전, 대규모 난민 사태 등 꼬일 대로 꼬인 중동 정세가 이번 쿠데타로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적
터키 "귈렌 돌려보내라"
美 "증거 제시해야" 반박
국제사회, 쿠데타 악용 경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16일(현지 시간) 미국 정부에 자신이 '실패한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한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을 추방해 터키로 넘길 것을 요구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가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 기여한 공동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만약 우리가 전략적 파트너라면 미국은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터키 정부는 "귈렌을 후원하는 어떤 나라도 터키의 친구가 아니며, 터키와 심각한 전쟁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면서 이번 쿠데타 뒤에 미국이 있다는 주장까지 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존 케리 국무부 장관은 이날 "귈렌과 관련한 어떤 요청도 아직 받은 바 없다"면서 "터키 정부가 철저한 조사를 통해 귈렌이 범법행위를 했다는 적법한 증거를 제시한다면 알맞은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터키 정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면서도 이번 쿠데타 연루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적법절차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이어 터키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미국이 실패한 쿠데타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는 공개적인 암시나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갑자기 양국 간 논쟁의 중심으로 떠오른 귈렌은 '히즈메트'(봉사)라는 이슬람 사회운동을 이끈 이슬람학자이자 종교지도자다. 귈렌과 에르도안 대통령은 한때 세속주의 군부의 정치적 세력에 맞서 대항한 정치적 동지였다.
두 사람은 2002년 현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이 집권한 이후 함께 터키의 민주화를 위한 개혁을 추진했고, 이는 2005년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협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두 사람이 협력하는 동안에도 귈렌의 사회운동에 연계된 검사와 판사들이 투옥됐고, 에르도안 정부 전복을 기도한 협의로 군 관료들이 기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결국 2013년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부패 수사를 계기로 완전히 결별한다. 당시 검경이 집권당을 겨냥한 부패사건 검거 작전을 벌이자 에르도안은 사법당국 내 귈렌 추종자들이 '사법 쿠데타'를 벌였다고 역공을 펼쳐 귈렌 추종세력을 정계, 법조계, 언론계, 군부에서 대부분 몰아냈다. 귈렌은 1999년 지병을 치료하고자 미국으로 이주해 자진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귈렌이 이끈 '히즈메트'는 교육 운동을 중심으로 하며 평화적이고 온건한 이슬람 운동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추종자들은 미국에서 160개가 넘는 공공 차터 스쿨을 여는 등 세계 각지에서 여러 사립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터키 각계에서 귈렌의 추종세력은 대부분 권력을 잃었지만, 군부와 사법부에 지지그룹이 일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들의 처지가 점점 위태로워진 군부 일부가 에르도안을 몰아내려고 이번 쿠데타를 주도했다는 게 에르도안 대통령의 설명이다.
귈렌은 16일 자신이 이번 쿠데타의 배후라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면서 "민주주의는 군사행동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한편 에르도안 대통령이 실패한 쿠데타를 정적 제거 등 권력 강화의 계기로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국제사회는 터키 정부에 법치에 따른 대처를 주문했다. 전날 쿠데타가 발생하자 발 빠르게 에르도안 대통령을 지지하고 나섰던 국제사회가 피바람은 안된다며 에르도안 정권에 경고를 하고 나선 것이다.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일부연합뉴스